푸드뱅크, 농업과 연계시키자

  • 입력 2021.01.24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18일 경기도 광명시 시립광명푸드뱅크 앞에서 폭설을 맞으며 경기도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 이용을 기다리는 시민들. 코로나19 상황에서 먹거리 기본권 위협을 당하는 시민들에게 ‘건강한 먹거리’가 전달될 수 있도록 고민할 시점이다.
지난 18일 경기도 광명시 시립광명푸드뱅크 앞에서 폭설을 맞으며 경기도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 이용을 기다리는 시민들. 코로나19 상황에서 먹거리 기본권 위협을 당하는 시민들에게 ‘건강한 먹거리’가 전달될 수 있도록 고민할 시점이다.

지난 18일 경기도 광명시의 시립 광명 푸드뱅크마켓 앞엔 20여명 남짓한 시민들의 긴 줄이 들어섰다. 이곳엔 올해 초 경기도(지사 이재명)의 ‘경기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가 설치됐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생계위기를 겪는 시민들에게 먹거리를 ‘그냥’ 제공하겠다는 이 지사의 발표 뒤, 이 코너를 이용하려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날 영하 13℃까지 떨어졌던 혹한의 날씨 속에 폭설까지 내렸건만, 시민들은 그 추위를 견디며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 앞에 줄을 섰다. 푸드뱅크마켓이 충분히 넓지 않아 다 들어갈 수가 없어서, 푸드뱅크마켓 일꾼들은 기다리는 시민들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기다리다 지쳐 발걸음을 돌린 시민들도 일부 있었고, 몇몇 시민들은 ‘여기에 줄 서도 되는 건가’ 싶어 머뭇거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물품을 받은 시민들은 봉투에 먹거리를 담아 귀가했다. 각 시민들의 봉투엔 라면이나 참치캔, 즉석밥 등의 먹거리와 마스크가 담겨 있었다.

푸드뱅크에도 ‘지역먹거리 선순환’을

경기도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의 먹거리들은 라면·황태통조림·즉석밥·즉석죽·과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 생계위기를 맞은 시민들의 먹거리 기본권을 고민하는 경기도의 의지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정의당 농어민먹거리위원회(위원장 박웅두)는 지난 12일 논평에서 경기도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 설치를 “코로나 재난시대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위한 좋은 사례”라 평가하면서도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고 밝혔다.

정의당 농어민먹거리위원회는 “캐나다에선 코로나 대책으로 가금류와 감자를 사들여 푸드뱅크에 공급하고, 이를 식품으로 가공해 취약계층에 지원하고 있다”며 현물지원은 농수축산물 판로 확보를 위한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여기서 잠시 푸드뱅크의 역할을 살펴보자.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사회복지협의회로부터 푸드뱅크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 중인 전국푸드뱅크(대표 서상목)에 따르면, 푸드뱅크는 ‘기업 및 개인으로부터 식품·생활용품을 기부받아 결식아동, 독거노인 등 저소득 계층에게 지원하는 물적 나눔제도’이다. 푸드뱅크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생겨났으며, 국내에선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후 급격히 증가한 노숙인 및 결식아동의 급식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됐다.

국내 푸드뱅크 사업을 총괄하는 전국푸드뱅크는「식품 등 기부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각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먹거리를 기부받아 지역 내 결식문제를 겪는 시민들에게 전달한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푸드뱅크 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먹거리 관련사업과는 별개로 진행된다. 2017년 농식품부와 보건복지부가 ‘농식품 나눔 업무협약식’을 통해 생산자단체 및 식품기업의 농식품 기부 활성화 관련 협약을 맺은 정도 외엔 이렇다 할 연계점도 없다.

현재 논의 중인 국가·지자체 푸드플랜에서도 푸드뱅크와의 연계를 통한 먹거리 기본권 확대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다. 푸드플랜도 어디까지나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공급식 확대에 주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푸드뱅크 사업 과정에서 돌게 되는 먹거리는 절대다수가 대기업에서 만든 라면·통조림·즉석밥 등의 가공식품이다.

2019년 제정된「경기도 먹거리 기본권 조례」제1조는 ‘지역먹거리 순환체계 확립을 통한 경기도민의 먹거리 보장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조례 제정 목적을 밝힌다. 조례 제2조에선 ‘먹거리 기본권’을 ‘모든 사람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안전하고 영양이 풍부한 먹거리를 연령, 성별, 물리적·사회적·경제적 여건에 따른 차별 없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 확보할 수 있는 권리’라 명시함과 함께, ‘지역먹거리’에 대해선 ‘경기도에서 생산된 농수축산물과 (경기)도에 소재한 업체에서 생산·제조·가공된 식품을 말한다’고 밝힌다.

경기도가 조례에 언급된 ‘지역먹거리 선순환을 통한 먹거리 기본권 확보’ 정신에 충실하려면, 당장은 쉽지 않더라도 점차 지역에서 만든 먹거리가 대기업의 인스턴트 식품을 대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도시농업·푸드플랜 통한 연계 고려해야

따라서 푸드뱅크 등 먹거리복지 관련 사업은 농업과 연계돼야 한다. 연계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도시농업과의 연계다. 캐나다 서스캐처원 주(州) 사스카툰 시의 ‘사스카툰 푸드뱅크’는 지역 도시농업 프로그램(Garden Patch)을 통해 주민들이 도시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긴급 식품 바구니 프로그램(Emergency Food Basket Program)’에 공급한다.

말하자면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과일과 채소를 재배해 지역 내 다른 구성원들의 먹거리 기본권 확보에 기여하는 셈이다. 사스카툰을 비롯한 캐나다 각지의 도시에선 공동체 차원의 도시텃밭 운영이 이뤄지는데, 그 목적 중 하나는 도시민들에게 제공할 먹거리 제공이다.

두 번째 연계방법은 더 국가적인 영역에서 이뤄져야 할 방법이다. 국가·지자체 푸드플랜과의 연계다. 2017년 농식품부와 보건복지부, 일부 농민단체들의 협약내용마냥 생산물을 ‘기부’하는 걸로 끝내는 농식품 기부 활성화 방안만으로 ‘지역 먹거리 선순환’을 표방하는 최근의 국가·지방먹거리 정책에 100%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결국 ‘기부’ 중심으로 편성된 현행 푸드뱅크 체계를 국가·지역 먹거리계획과 연결시켜, 먹거리 기본권을 침해받는 지역민들에게 ‘공공급식’ 또는 그 비슷한 성격의 먹거리정책을 공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