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법 내려온다

  • 입력 2021.01.24 18:00
  • 수정 2021.01.26 09:25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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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농대를 졸업했으나 어찌하다보니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의 일이다. 그래서 이력서, 명함 등에는 사회학박사라고 적어놨지만 나의 정확한 학위명은 법학박사(사회학 전공)다. 우리나라는 미국식 학위명을 쓰기 때문에 사회학 전공은 문학박사 학위를 받지만 내가 대학원을 다녔던 중국은 법학박사 학위를 준다. 사회학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인류학, 정치학, 국제관계학, 신문방송학 모두 법학박사 학위를 준다. 사회과학 대부분이 법학박사 학위로 귀결된다.

대학 때 법학개론 정도의 수업을 들었고 한때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헌법 등을 공부한 적은 있지만 사회학을 공부한 내가 법학박사를 받는 게 매우 어색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사회학 등 사회과학 분야에 왜 법학박사 학위를 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법을 너무도 고상하고 권위의 학문으로 여겼던 것 같다. 법대, 사법고시, 검사, 판사 등등. 법은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지 않는 부분이 없고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지만,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영역은 법을 관장하는 소수 학문과 전문기관의 영역으로 떠넘겼다. 그래서 법학은 일반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돼버렸다.

사실 법은 한 사회의 사람들이 지켜야 할 상식의 결과물이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 상태의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돼 공동체가 유지되고 서로의 주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회계약이 중요하다. 이 사회계약은 그 사회의 일반적 상식이며 사회구성원 간의 약속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민주국가 헌법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바이마르헌법도 제1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만들어진 자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나치에 의해 그 실효성을 잃어버렸지만 이후 민주주의 국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법(法)을 한자로 풀이하면 ‘물(水)이 흘러가는(去) 모습’을 뜻한다. 물은 그 특성상 아래로 내려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래서 노자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말했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 것이 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물은 순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순자는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면서 백성을 물에, 왕은 배에 비유해 ‘정치하는 사람들이 백성을 늘 두려워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 얘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요즘 법을 다루는 사람, 기관들이 하는 행태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법이 백성을 위해 아래로 흐르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 사법쿠데타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유, 정의, 평등을 실현해야 할 그들이 그들만의 자유, 그들만의 정의, 그들만의 평등을 위해 법을 철저히 유린하고 있다. 그들은 검사와 판사가 아니라 한갓 법기술자로 전락한지 오래다. 독재와 군사정부에서 주구노릇하며 하나하나 쌓아온 특권으로, 그들은 민중의 힘으로 이룩한 민주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 시대 그들의 기득권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법과 상식을 짓밟고 있다. 합리적 이성을 상실한 집단광기가 아닌가 싶다. 검찰, 법원, 감사원, 방통위 등의 행태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무엇을 위해, 왜 그 추운 날 촛불을 들었는지 자괴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조선말 삼정의 문란으로 전국에서 발생한 민란을 타개하기 위해 조선조정은 삼정이정청을 만들었지만 문벌귀족들이 장악하면서 실패했고, 동학농민군이 고부군수 조병갑을 단죄하지 못했기에 나중에 그는 판사가 돼 동학 2대 교주 최시형 선생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를 만들었지만 친일파와 기득권에 밀려 실패했고 참여정부의 실패도 결국 어설픈 검찰개혁에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에서 한 번도 개혁되지 않는 검찰과 법원. 이들의 개혁은 공수처 설치도 중요하지만 나는 이들 기관의 지방 이전과 같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본과 기득권의 최정점인 ‘강남캐슬’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그들에게 지방 이전은 천형보다 무서운 형벌이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시기, 어설픈 개혁은 다시 화를 초래할 것이다. 단호한 개혁을 통해 범이 아니라 법이 백성들 사이로 내려와 그들을 편안케 해야 한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헌법에도 명시돼 있음에도 누더기가 돼버린 농지법을 개정해 농정의 근간을 다시 세워야 한다. 관료와 자본에 포획된 농안법도 농민과 소비자의 입장에서 상식적 수준으로 개정돼 다양한 주체가 유통에 참여하고 공정한 가격이 농민들에게 보장돼야 한다. 농민이 만드는 ‘농민기본법’,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법’도 입법화돼 진정한 개혁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상서로운 기운이 넘친다는 흰 소의 해 신축년, 소의 발걸음처럼 뚜벅뚜벅 개혁입법을 통해 희망과 신명을 만드는 한해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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