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원칙 흔드는 미봉책, 곱씹어 볼 일

  • 입력 2021.01.24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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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부는 지난 19일 열린 제3차 국무회의를 통해 설 명절기간인 지난 19일부터 오는 14일까지 농수산물 및 농수산가공품 선물가액 범위를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한시적 상향하는 내용의「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공직자 등이 예외적으로 사교·의례 목적에 부합할 때 받을 수 있는 선물의 효용범위를 한시적으로 조정한 것이다.

이에 농협중앙회는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침체 및 기록적인 한파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일시적으로나마 농산물 판매량이 증가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점은 농민들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법으로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해 일명 ‘김영란법’으로 일컬어지며 2015년 국회를 통과, 2016년 9월부터 시행됐다.

청탁금지법 제정 당시부터 현재까지 농업계에선 농수산물 선물가액 상향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이에 이번 농수산물 선물가액 상향 결정에 앞서, 지난해 추석 명절에도 상향이 이뤄진 바 있다. 정부는 앞선 2018년에도 설 명절 한 달 전 농수산물에 한해 선물가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한 바 있다.

청탁금지법은 청렴하고 투명한 사회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담은 법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필요에 따라 법 적용의 기준을 일시적으로 변경하는 일이 반복될 경우 법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청탁금지법 제정 취지가 흔들린다면 이미 결정된 농수산물 선물가액 상향도 신중하게 곱씹어 볼 일이다.

청탁금지법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가 고심이 깊었던 것도 그래서다. 국민권익위원회 내부 논의 과정에선 농림축수산업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적극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과 법적 안정성 및 정책 신뢰성 훼손을 우려하며 유통구조 개선 등 제도개선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의견 등이 격론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상향이 결정됐다. 농민을 돕겠다는 의지는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이 원칙을 흔들 가능성이 있는 미봉책이어선 곤란하다. 진심으로 농업·농촌·농민을 배려하려는 목적이라면 결국 정부가 할 일은 농산물 제값받는 구조를 만드는 게 우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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