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생물다양성 강화정책, 이제부터라도

  • 입력 2021.01.17 18:00
  • 수정 2021.01.24 16:0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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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최근 농업의 공익적 기능 중 논생물다양성 확보 관련 논의가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생물다양성 문제는 현재 농업정책 속에서 어디까지나 부수적 위치를 차지할 뿐이다.

그나마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위원장 정현찬, 농특위)가 공익직불제 중 선택직불제의 내용으로 생물다양성 관련 내용을 넣고자 논의 중이다.

농특위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선택형직불 확대방안’ 초안의 공익증진 개인·단체 프로그램 내용 중 정량평가 지표로서 ‘생물다양성 관련 조사를 통한 곤충·물고기·새 등의 개체수 확인’ 및 ‘둠벙 조성 논의 저서무척추동물(풍년새우·털줄뾰족코조개벌레·긴꼬리투구새우 등)과 조류의 출현종·개체수 파악’ 내용을 포함시켰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농업과 생물다양성을 연동시킨 논의가 활성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논습지 복원으로 철새가 돌아오다

지난 17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장전리의 논두렁에서 목격한 황새. 유유히 논두렁을 거닐고 있다.
지난 2017년 4월 17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장전리의 논두렁에서 목격한 황새. 예산 농민들의 친환경농사를 통해 황새들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일부 선진국들은 농업정책 수행 과정에서 생물다양성 관련 정책을 적극 수립 중이며, 생물다양성 확보 노력을 기울이는 농가들에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또한 민간차원에서의 논습지 보전 및 생물다양성 확보 노력도 활발하다.

일본의 경우 정부 부처별로 논습지 보전 정책을 추진 중이다. 환경성에선 습지 보전 연구활동을 진행하는 개인 및 단체에 ‘생물다양성 등 추진비’란 명목의 교부금을 지원한다. 농림수산성에선 ‘토지개량법’에 따른 ‘생태계 보전형 논 정비사업’을 통해 친환경 수로를 설치하도록 각 현(縣)에 권고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논습지 보전 사례가 미야기현 타지리마을 가부쿠리늪의 사례이다. 원래 가부쿠리늪 일대는 일본 최대의 기러기 월동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땅이 농경지로 개간되면서, 겨우내 논이 마른 상태로 남겨져 습지 기능이 상실되고 습지 생물들도 멸종위기에 처했다.

이에 일본기러기보호협회는 기러기 서식과 논농사의 공존을 위한 ‘가부쿠리늪 100년 복원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100년에 걸쳐 가부쿠리 논의 습지로서의 기능을 복원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습지 기능 재활성화의 방안으로 무논농법이 제안됐다.

그 뒤 지역 농민들의 무논농법 실천으로 철새들에게 새 서식지를 제공함으로써, 기러기 뿐 아니라 여름철새인 해오라기, 백로 등의 개체수도 기존 대비 3.6~3.8배 증가하고 미꾸라지와 실지렁이 개체수도 약 5배 증가했다. 가부쿠리 논에서 재배된 쌀은 ‘친환경 기러기 쌀’로 각광받았다.

한편 유럽연합(EU)에선 나투라 2,000(Natura 2,000, Natura는 ‘환경’이란 뜻) 프로그램을 통해 멸종위협을 받는 생물종 및 서식지의 보전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생태계 보전을 위해 인간의 활동 전체를 금지하는 게 아닌, 농민의 생존권과 자연보전 목적을 조화시킨다는 점이다. 농민을 ‘자연보전지역의 관리자’로 여기며 농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한다.

둠벙 조성, 다랑이논 보전 등을 통한 생물다양성 확보 절실

지난해 8월 서울 도봉구 무수골의 생태논에서 만난 거미. 거미는 논의 각종 해충들을 잡아먹는 대표적 생물 중 하나이다.
지난해 8월 서울 도봉구 무수골의 생태논에서 만난 거미. 거미는 논의 각종 해충들을 잡아먹는 대표적 생물 중 하나이다.

 

사실 농업환경보전 정책으로 생물다양성이 늘어난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충청남도는 2016~2018년에 걸쳐 보령시 장현마을과 청양군 화암마을에서 농업생태환경보전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충남연구원은 2018년에 프로그램 참여농가의 논에서 전반적으로 생물종 및 개체수가 늘어났음을 확인했다. 특히 둠벙을 조성한 논에선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금개구리가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충남연구원은 “농업생태환경보전프로그램에 참여해 둠벙을 조성한 논이 생물다양성이 높고 서식지 안정성도 높게 나타나, 둠벙 조성이 논 생태계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데 많은 효과가 있는 걸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충남연구원은 당시 이와 관련해 △농업생태환경보전프로그램의 지속 △친환경적 농지 관리법 개발 △친환경농법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교육자료 개발 △농촌체험마을의 논 생태교육 프로그램 개발 △생물 서식지 복원 등의 정책을 촉구했다.

충남연구원은 특히 생물 서식지 복원과 관련해 “논의 일부만을 저습지화해도 (금개구리, 물장군 등의) 생물이 유입돼 개체군을 유지하는 걸로 확인됐다”며 “장기적으로 이러한 시도(둠벙 조성 등 논 일부 저습지화)가 농업·환경관련기관의 통합적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이뤄진다면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한편 경작 측면에선 조건이 불리하나 경관보전 및 다양한 생물종 서식 등의 공익적 가치가 높은 농지에 대한 보전정책, 그리고 그곳에서 농사짓는 농민에 대한 지원정책도 절실하다. 국내에선 다랑이논이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라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논살림사회적협동조합 주최로 열린 ‘제2회 생물다양성을 살리는 논농업 교류회’에서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 다랑이논(구들장 논)이 가진 가치를 이야기했다.

오 교수는 “구들장 논은 자연을 변형해 인공적으로 조성한 논이지만, 구들장 논의 암거구조(배수용 수로가 논두렁 아래에 조성된 구조)에 의해 형성된 공극과 지속적인 물 관리에 따른 자정 정화기능으로 논생태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며 “구들장 논 주변에선 논의 통수로에 서식하는 절지동물, 물을 머금은 논에서 서식하는 양서·파충류, 이를 먹고 사는 멸종위기 2급인 말똥가리·조롱이 등의 맹금류가 계층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흙속의 유기물을 먹고 살며 잡초와 해충을 억제하는 긴꼬리투구새우도 발견된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구들장 논을 비롯한 전국 각지 다랑이논의 보전이 절실하며, 다랑이논을 단순히 ‘관광용 경관’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농사’가 계속 이뤄지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게 오 교수의 입장이다. 다랑이논도 농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논으로서의 가치도, 생물다양성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중국의 경우 다랑이논 보전지역의 경관이 유명해지면서 그곳에 호텔이 늘어났는데, 이에 해당 지역 호텔에서 농민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관광객 증가와 농지 훼손으로 논농사가 중단되면 호텔도 망하기 때문”이라 밝혔다.

※ 참고자료 : <농업의 지속성 제고를 위한 생물종다양성 증진 방안>(충남연구원, 2013), <농업생태환경프로그램의 생물다양성 증진효과와 정책제안>(충남연구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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