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논 따라, 인적마저 사라진 농촌체험마을의 겨울

20년 역사 ‘외갓집체험마을’ 사례로 보는 농촌체험마을 현주소

  • 입력 2021.01.16 20:00
  • 수정 2021.01.16 20:03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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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2월 겨울철 농촌체험을 위해 경기도 양평군 외갓집체험마을을 찾은 어린이들이 썰매를 타며 환하게 웃고 있다. 양평외갓집체험마을 제공
지난 2017년 2월 겨울철 농촌체험을 위해 경기도 양평군 외갓집체험마을을 찾은 어린이들이 썰매를 타며 환하게 웃고 있다. 양평외갓집체험마을 제공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에 위치한 외갓집체험마을은 ‘농촌관광’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희박하던 지난 2001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업계의 대선배격인 체험마을이다. 농협의 팜스테이 사업(1999년)을 비롯해 체험형 농촌관광 모형이 실증 실험에 들어가던 시기, 이곳에선 신론리에서 태어나 자란 농민 김주헌씨가 사업을 기획하고 스스로 ‘촌장’을 맡아 체험마을을 시작했다. 김홍구 사무장은 ‘아무 것도 없던 시절’ 촌장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이 체험마을의 거의 모든 게 도전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며 마을 사람들이 점점 힘을 모아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혼자서 식사도 준비하고, 체험도 안내하시고 하셨다고 해요. 그냥 모든 시도가 처음이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비교적 서울 등 수도권 인구밀집지역과 가까운 데다 용문산과 두물머리 등 양평군의 빼어난 관광자원과의 연계 효과도 있어,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사무국과 수박·방울토마토·딸기 등 원예작물 재배지, 각종 체험장, 숙박시설을 갖춘 완성형 체험마을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경험이 쌓인 끝에 4계절 내내 관광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갖췄다는 점이 특별하다. 부모와 아이들의 호평 속에 이 체험마을은 훌륭한 성공사례로 자리 잡았고, 지역에서 매년 150명에 이르는 주민들에게 크고 작게 농외소득을 제공하는 것도 자랑할 만한 성과다.

그러나 이 탄탄했던 체험마을도 코로나19의 여파는 피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이전의 주력 상품은 20~30명 정도의 인원을 대상으로 했는데, 주로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에서 학급 단위 체험활동을 위해 찾거나 각종 단체들이 단체관광을 위해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외부 집합활동을 자제한데다, 최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추가된 것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피해가 누적되자 사무국은 사실상 비활성화 상태로 최소 인원만 유지했고, 농장이나 주방에서 일을 돕던 지역 주민과 체험 진행을 위해 고용된 인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달리 말하면, 이곳뿐만 아니라 지난해 기준 전국 1,115여 개소의 체험마을에 농외소득을 의지하고 있는 많은 농민들이 타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학교들이 오직 농촌 현장을 통해서만 알릴 수 있는 가치를 거의 교육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예상해볼 수 있다.

“아이들이 감자를 캐다가 강판에 갈아서 전을 해보고 나면 이론적으로만 접했던 농업에 대해 비로소 ‘이거구나’하고 알게 되거든요. 학교 선생님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걸 현장 농민들은 설명할 수 있어요.”

수확 체험을 위해 마련한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들이 자라고 있지만 방문객은 미미한 실정이다.
수확 체험을 위해 마련한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들이 자라고 있지만 방문객은 미미한 실정이다.

사무국에서는 궁여지책으로 ‘키트’를 강구했는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밀키트’와 유사한 형태다. 밀키트는 가정에서 일체 손질된 재료를 배송 받아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고안된 식료제품을 말한다. 그와 같이 각종 전통 소품을 만들거나 음식을 만드는 내용의 프로그램들을 포장제품으로 만들어 학교나 가정에서 비대면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인데, 여러 방면으로 배포하며 홍보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원래는 2019년도까지만 해도 매년 8만명 정도 방문하셨는데, 작년에는 통계를 내지도 못할 정도로… 거의 1/10 이하로 줄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체 방문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오시기만을 바랄 수는 없는 상황이라 작년 말부터 홍보를 시작해서 학교에서 원하면 받아볼 수 있게, 그렇게라도 수입을 만들려고 하는 중이죠.”

 

김주헌 경기농촌체험휴양마을협의회장.
김주헌 경기농촌체험휴양마을협의회장.

올 겨울은 작년과 다르게 마을 하천을 활용한 체험활동을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추웠지만, 지난 연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적용돼 그 단단한 빙판은 별 쓸모가 없어졌다. 현재는 주말 한정으로 찾아오는 4인 이하의 가족 방문객을 상대로 딸기 수확 체험 등만 진행하는 실정이다. 지리적 이점 덕에 양평군에는 이곳 말고도 29곳의 체험마을이 있지만, 정부 정책을 따라 법인을 설립하고 기획 사업의 형태로 우후죽순 생긴 체험마을들 전부가 이 상태로 올해를 넘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기농촌체험휴양마을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주헌 촌장은 이제 정부 지침만 따르고는 살 수 없어 스스로 방법도 찾고, 돌파도 해볼 때가 오고야 말았다면서도, 정부가 농촌체험관광업을 그저 ‘부수입’으로 취급하며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시각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코로나19 상황은 정부 자금에만 의지해 생겨났던 어설픈 체험마을들이 도태되는 계기가 될 거에요. 하지만 사명감과 뜻을 가지고 교육적 가치를 제대로 생산해보겠다는 마을에 대해서는 일단 이 시기를 버틸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뒷받침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생산과 가공, 그리고 체험관광까지 연계한다는 ‘6차 산업’ 형태의 농업은 어느새 대안을 넘어 점점 현실로 자리했고, 생산하는 가치 또한 의미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종종 발생할 이 불가항력의 난관을 자력으로 극복하기엔 역부족인 모양새다. 체험마을이 생산하는 경제·교육적 가치 존속을 위해 정책적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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