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농협 미곡처리장서 쌀 28톤 사라져 ... "의혹 밝혀야"

횡령 내부고발 직원 극단적 선택에 농민들 “한 인간의 존엄 짓밟지 마라”
강진군농민회, 철저한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촉구

  • 입력 2021.01.14 08:42
  • 수정 2021.01.14 11:59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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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 13일 전남 강진군 강진읍 농협중앙회 강진군지부 앞에서 열린 '강진농협 통합RPC 쌀 횡령사건 진상규명 요구안 전달 농민단체 기자회견'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진군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관련 내용에 대한 진상규명을 농협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3일 전남 강진군 강진읍 농협중앙회 강진군지부 앞에서 열린 '강진농협 통합RPC 쌀 횡령사건 진상규명 요구안 전달 농민단체 기자회견'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진군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관련 내용에 대한 진상규명을 농협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양오길 강진군농민회장이 농협 강진군지부장에게 진상규명 요구안을 전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양오길 강진군농민회장(왼쪽)이 김엽수 농협 강진군지부장에게 진상규명 요구안을 전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남 강진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강진군농협통합RPC)에서 쌀 횡령 의혹이 발생한 가운데 이 문제를 내부에 제기한 관리자급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분노한 농민들은 지난 13일 농협중앙회 강진군지부 앞에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기자회견과 강진군농민회 관계자 등에 의하면 강진군농협통합RPC 대표이사 A와 영업과장 B는 지난해 8월 무렵 RPC에 보관하던 28톤 가량의 쌀을 빼돌려 업체 2곳에 넘기고 5,000만원을 받았다. 이들은 이 중 3,000만원을 업체 2곳에 판매장려금으로 되돌려줬으며, 나머지 2,000만원은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횡령 의혹을 확인한 관리자급 직원 C는 지난해 10월 중순 이를 강진군농협통합RPC 출자 농협에 알렸고, 이를 통해 횡령 의혹이 드러나며 11월 중순 강진군농협통합RPC 자체 감사로 이어졌다.

자체 감사 결과 문제가 확인되자 강진군농협통합RPC는 농협중앙회 특별감사를 요청했고,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회가 11월 중하순 특별감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자체 감사에 앞서 11월 초 농협중앙회 정기감사가 이뤄졌지만, 횡령 의혹과 관련된 지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특별감사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횡령 의혹을 내부에 알린 관리자급 직원 C가 지난해 12월 31일 자정을 넘긴 1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농민들 사이에선 C가 횡령 의혹 제기로 내부에서 곤란함을 겪게 된 데다 횡령 의혹을 축소하려는 농협 내부의 움직임 등이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이 직원은 지역에서 나고 자란 성실한 가장이고 책임감 있는 직장인으로 자살할 이유도 없었다는 게 농민들의 전언이다.

농민들이 강진군농협통합RPC에 벌어진 횡령 의혹도 문제지만 이를 알리고 개선하려던 관리자급 직원이 죽음에 이르도록 방관한 농협 내부의 상황이 더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이에 농민들은 이 직원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하고 명예 회복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3일 강진군농협통합RPC 앞에 쌀 횡령사건과 관련해 농민들이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3일 강진농협통합RPC 앞에 쌀 횡령사건과 관련해 농민들이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승호 기자

더불어 농민들은 횡령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난 만큼 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후속 조치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농민들은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말만 무성했던 여러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지금 밝혀진 횡령의 규모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며 “풍년엔 쌀값 하락을 내세우고, 흉년이면 미질 저하를 내세우며 나락값을 후려쳐 농민들의 등짝엔 피멍이 들었다. 그래놓고 뒤에서 농민의 재산을 쌈짓돈처럼 챙겨 먹었는데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나”라고 성토했다.

또한 직원 사망 사건에 대해서도 “비리 사실을 알린 직원을 두 달이 넘도록 어떤 보호조치도 하지 않고 비리 현장에 방치한 무책임한 대처가 사망에 이르게 한 직접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양오길 강진군농민회장은 “RPC를 농민조합원이 만들었음에도 대표이사도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선출하고, 이사도 조합장들이 맡고 있다. 농민은 어떤 권한도 없다”며 “농협 직원의 쌀 도둑질을 농민들은 절대 용서할 수 없고, 직원이 죽은 이유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한석 전 회장도 “RPC 관계자들과 이사를 맡은 조합장들이 간접살인의 주범으로 이들을 처벌하고, RPC가 새롭게 농민의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농민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해 8월 이후 현재까지 강진군농협통합RPC 이사회 회의록 공개 △횡령 사건 자체감사 결과 공개 △횡령사건 엄중처벌 및 방안 제시, 외부 회계감사 실시 △조합원 참여 보장을 위한 농민조합원 사외이사제도 실시 △유명을 달리한 직원의 명예회복과 합당한 예우 등의 5대 요구안을 밝히고, 이에 대한 질의서를 농협중앙회 강진군지부에 전달했다.

농민들은 농협중앙회 조감위 특별감사 결과가 곧 나올 예정이지만 전향적 해법 제시가 없다면 관련자 형사 고발 등 법정투쟁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강진군농협통합RPC는 횡령 의혹이 드러난 가운데 대표이사를 해임하고 신임 대표이사를 선출했으며, 관련 영업과장은 대기 발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오길 강진군농민회장이 강진군농협통합RPC 이사회 회의록 공개를 비롯한 5대 요구안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다. 한승호 기자
양오길 강진군농민회장이 강진군농협통합RPC 이사회 회의록 공개를 비롯한 5대 요구안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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