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이발사⑥ 무허가 단속, 이발 기구를 갖고 튀어라!

  • 입력 2021.01.01 09: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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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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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이발소에서 3년 동안 그럭저럭 기술을 익힌 김호면은,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꼬마’ 생활을 면한 뒤에 어느 정도 이발 기능에 자신이 붙으면, 업소를 옮겨야 기술자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친구의 소개로 그가 찾아간 곳은 무허가 이발관이 밀집된, 신설동 하천변의 판자촌이었다. 청계천이 복개되지 않았던 시절, 동대문에서 노벨극장에 이르는 개천가에는 무허가 이발소가 30군데도 넘게 늘어서 있었다.

“간판도 뭣도 없이 판잣집 안에 이발 기구를 대충 갖춰놓고서 청계천변의 염색공장 노동자들, 막일하는 사람들, 지게꾼들, 노점상들…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푼돈만 받고 머리를 깎아줬지요. 업소는 무허가였지만, 그래도 이발소 주인들은 모두 면허증을 소지한 사람들이었어요. 시내 번듯한 곳에다 이발소를 차릴 형편이 안 되니까 거기에다 무허가로….”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에 빈민촌 주민들과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싼 요금으로 이발을 해준 셈이었는데, 그 무허가 업소가 김호면에게는 유리한 점이 있었다. 머리를 어떻게 깎아주든 이발 잘못했다고 따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기술을 연마하기에는 대단히 좋은 실습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무허가 이발관이 늘어선 그 판자촌에서는 보름이 멀다하고 흥미진진한 숨바꼭질이 벌어지곤 했다.

“무허가 이발소의 첫집부터 끝집까지를, 모내기 할 때 잡는 그 못줄 같은 것으로 죽 연결을 해놓고 군데군데에 깡통을 달아놨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깡통이 요란하게 울린 겁니다. 나는 애들이 장난을 치나보다 했는데, 주인이 허겁지겁 머리 깎던 손님을 내쫓고는 이발 기구를 챙기는 거예요.”

-아저씨, 왜, 왜 그러는데요?

-떴어! 구청 위생과에서 조사 나왔단 말이야!

-그런데 이발 기구들을 갖고 어디로 가시게요? 나는 어떻게 해야….

-난 뒷문으로 튈 테니까 단속반 들이닥치면…이발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시치밀 뚝 떼란 말이야. 넌 전라도에서 삼촌 집에 놀러온 조카라고 해. 너 사투리 잘 하잖아. 난 간다!

깡통소리를 신호 삼아서, 무허가 이발소의 쥔장들은 제각기 전 재산인 이발 기구를 챙겨들고는 도망을 쳤다. 졸지에 혼자 남게 된 김호면은 ‘시방 요거이 뭔 놈의 재변이라냐’를 뇌까리면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는데, 이윽고 단속반이 판잣집 문짝을 부술 듯이 두드려댔다.

-문 열어! 빨리 문 안 열거야!

촌놈 김호면이 부러 청승맞은 표정으로 하품을 쩍쩍 하면서 문을 열었다.

-어디서 온 뉘신디 놈의 집 대문짝을 띠디레쌓고 난리를 쳐싼당가라우?

-여기 쓰레받기에 머리카락 있는 것 확인했으니까, 좋은 말 할 때 이발 기계 내놔!

-뭔 소린지 몰르겄네. 놈의 여염집에 쳐들어와갖고 뜬금없이 뭔 놈의 이발 기계를 내놓으라니…. 나는 그런 것 몰릉께, 자던 낮잠이나 더 자야 씨겄소. 싸게들 나가 보씨요이.

-다 뒤져봐도 없는데…. 하아, 벌써 싸들고 튀었구먼.

단속반원이 하는 수 없이 옆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호면 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부터 난다고 했다.

“참, 단속반한테 걸려서 이발 기구를 다 뺏기면서도 깡통을 흔들어서 신호를 보냈던 그 첫 집말이에요, 나머지 이발소 쥔장들이 50원씩 거출해서 이발 기구 살 돈 마련해 줬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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