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는 농민에게, 헌법정신 지켜야

  • 입력 2020.12.23 00:00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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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21조 경자유전의 원칙은 농업정책에서 지켜져야 하는 기본 정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농사짓는 농민에게 꼭 필요한 것이 농지이며 농사짓지 않는 사람에게 농지는 그저 땅일 뿐이다. 헌법 정신을 지켜 농지를 농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주장이지만 이는 장롱 속 오래된 옷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의도적으로 잊혀져가고 있다. 얼마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선 우리가 지켜가야 할 농지제도의 방향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최근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농지 실태조사는 현실에서의 농지소유와 이용형태에 대해 잘 알려주고 있다. 중간조사결과에서 밝혀진 것만 봐도 한 곳에서 부재지주의 비율이 절반을 넘는 지역도 존재할 정도로 농사를 짓지 않고 타 지역에서 농지만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의 비중이 높았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봐도 이 정도인데 농지 전수조사를 통해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높은 수의 부재지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헌법에서는 농지의 소작을 금지한다고 했지만 절반을 넘는 농민들이 이미 소작농인 셈이다.

소작농으로 살아 갈 수밖에 없게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은 농지법의 역할이 컸다. 1949년 6월 21일 농지개혁법이 공포되며 그 당시 농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소작농의 비율이 상당수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농지개혁법은 1994년 농지법이 제정되면서 폐지되는데 상위법의 정신을 지켜내야 하는 농지법은 계속해서 농지제도의 기본이념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왔다.

자작농체제를 훼손하고 농민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또 외면하고 있는 것이 바로 법을 만들고 바꾸는 국회이다. 21대 국회가 개원하고 지금까지 발의된 농지법 개정안은 총 7건인데 이 중에는 농지를 보호하기 위한 방향의 개정안과 함께 농지를 훼손하는 방향의 개정안도 있다. 지금이라도 누더기가 돼 버린 농지법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바로 국회의 책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역사를 봐도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제헌헌법의 원칙에서부터 현행 제6공화국 헌법까지 농민의 자경을 보장, 자경을 하는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정신은 변함없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지개혁법이 담고 있는 원칙인 소작금지, 경자유전, 소유상한은 엄격하게 지켜져 왔다. 헌법 제121조 2항에서 말하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이 하위 법률에서 무자비하게 헌법 정신을 위배하는 방향으로 개정돼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제헌헌법에서부터 현행 헌법에까지 부단히 계승되고 있는 경자유전의 이념은 그저 형식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농지가 부동산으로 부를 증식시킬 수 있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형성돼야 하고 이를 지켜내기 위한 강력한 제도적 장치 또한 마련돼야 한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방향으로 농지제도를 바꿀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농지법 전면개정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농지법을 하루빨리 갈아엎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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