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만 먹고는 못 사는 시대, 왜 밥에만 원산지 쓸까

  • 입력 2020.12.13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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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한동안 먹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아무거나 먹었다는 의미보다는 그냥 평소 먹던 대로, 딱히 절제 없이 먹었다는 쪽에 가깝다. 그리 살았어도 활동량이 적지 않아 체중이 일정 수준에서 더 이상 늘지는 않았지만 ‘정상’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 이제는 정말 변화가 필요했다.

결심 이후 탄수화물 섭취 제한을 중점으로 두고 칼로리 획득을 조절한 결과 두 달 만에 목표치였던 7kg의 체중을 깎아냈다. 한층 가벼워진 몸에 만족스러운 것도 잠시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르는 생각, ‘내가 쌀을 얼마나 먹었을까?’

어느 정도 일정한 굴레의 직장 생활을 하고 대개 하루 한 끼는 동일한 곳에서 식사를 하며 현금을 거의 쓰지 않기에, 신용카드 사용기록과 직장에서의 출타기록 그리고 아직 많이 닳지 않은 기억의 조각을 조합해 지난 한 달의 식생활을 대강이나마 되돌아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11월 한 달 동안 먹은 쌀의 양을 파악해보니 대략 공기 기준으로 25개 안팎이다. 일터에서 먹은 끼니가 14번(간혹 면요리가 나올 때도 있지만 산정하지 않았다)에 바깥에서 먹은 끼니 중 쌀이 들어간 끼니는 7번, 혼자 사는 집에서는 즉석밥을 3개 소모했고 고향집에서 먹은 ‘집밥’이 2번 정도였다. 밥 한 공기가 200g이라고 가정했을 때 한 달 동안 5kg 정도의 쌀을 섭취한 셈인데, 일터에서는 보통 한 공기 정량 수준보다도 덜 먹기에 실제로는 더 적을 것이다.

하루에 한 공기의 쌀도 소비하지 않은 셈이고, 연간 소비량으론 60kg에 못 미치는데, 공교롭게도 지난해 1인당 평균 쌀 소비량이 딱 59.2kg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충분히 어렵지 않은 시대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 순간이다. 한창 나이의 성인 남성조차 이럴진대 앞으로 쌀 소비량의 감소세를 멈출 수나 있을까.

무너지고 있는 우리 농산물 자급률을 지탱하고 있는 최후의 보루가 쌀이다. ‘개방농정’도 쌀만큼은 100%에 가까운 자급률을 사수하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쌀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고 있어 그 높은 자급률은 빛을 점점 잃고 있다. 쌀을 밀어내고 밥상을 차지한 대체품들의 수입산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줄어든 쌀 소비량만큼 다른 우리 먹거리를 소비할 수 있다면야 자급률 사수를 외치는 입장에서 부끄러움은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쌀 대신 내 뱃속으로 들어간 채소와 빵조각, 고깃덩이 등의 국내산 비중은 과연 얼마나 됐을까. 대부분 알 수 없거나, 혹은 이제 나로서는 출처가 훤히 보이는 물건들이다. 하지만 도시 살면서 쌀밥이 아닌 밥상을 찾는 동시에 매번 수입산도 피하는 것은 아마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변명해본다.

만약 대부분의 음식에 원산지 표기가 이뤄졌더라면, 최소한 나 같은 사람들은 골라서 먹으려는 시도라도 하지 않았을까. 조리된 식품을 파는 음식점에서 의무적으로 원산지를 표기해야 할 품목은 쌀, 콩, 김치 및 축·수산물에 그친다. 농업계에선 이 범위에서 벗어나는 품목들 전반에서 수입산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많은 채소가 들어가지만 원산지 표기는 배추와 고춧가루에만 한정하고 있는 김치가 대표적이다.

원산지표시제가 도입된 시기는 지난 1991년으로, 쌀은 지금보다 1인 당 두 배를 먹었고 중국산 김치는 아예 존재하지 않던 시기다. ‘쌀밥에 김치, 고기반찬’이 좋은 밥상의 정석이었을 땐 충분한 안전장치였겠지만 그 시대는 이미 저문 지 오래다. 천태만상의 밥상이 난무하는 오늘날 현실에 맞게 원산지표시제의 표기 대상 확대가 절실하다. 알 권리를 충족한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우리 농수산물 자급률도 덩달아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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