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l 20년 전 무너지기 시작한 농지, 오늘날 농업을 좀먹다

20년 전 한국농업 그리고 오늘 (최종)

  • 입력 2020.12.13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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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한국농정>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2000년 11월 창간호부터 2001년 12월까지 본지의 지면을 돌아보고자 한다. 20년 동안 450만명에 달하던 농민의 숫자는 300만명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시의 농업계 현안이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것도 많았다. 이에 본지는 20년 전 농업계를 조명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01년 5월 31일 발행된 본지 제23호 1면 기사와 만평은 농림부의 농지법 시행령 개정이 “땅 투기만 조장한다”며 철회를 요구하는 농민단체의 반응을 싣고 있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농업법인의 부동산 투기가 뉴스가 되는 농업계 현실은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한승호 기자
2001년 5월 31일 발행된 본지 제23호 1면 기사와 만평은 농림부의 농지법 시행령 개정이 “땅 투기만 조장한다”며 철회를 요구하는 농민단체의 반응을 싣고 있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농업법인의 부동산 투기가 뉴스가 되는 농업계 현실은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한승호 기자

 

본지는 2001년 5월 31일 1면에 ‘비농민의 300평 이하 농지 취득 허용’을 추진하는 농림축산식품부 규탄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농식품부는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도 300평 이하 농지를 사들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농지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땅 투기 조장을 우려한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는 즉각 “농지는 땅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한 것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소유하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농식품부는 이후 농지법과 시행령 개정을 강행했고, 2020년 현재 농지법은 다수의 농지 소유제한 예외 규정 등으로 누더기가 돼 버렸다.

 

‘경자유전의 원칙’, 어디로 갔나

그간 농지법은 수차례 개정을 거듭하며 비농민의 농지 소유제한을 완화해왔다. 1996년 1월 1일 시행 당시만 하더라도 농지법 제6조(농지의 소유제한)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이를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며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물론 당시에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교육법에 의한 학교 및 농식품부령이 정하는 공공단체·농업연구기관·농업생산자단체 △상속 △담보농지 취득 등 몇 가지 경우를 농지 소유제한의 예외로 뒀지만, 2020년 현재 농지법 상의 농지 소유제한은 그보다 훨씬 음성적으로 다양해진 형국이다. 농지의 소유상한 역시 대폭 완화됐다.

우선 1999년 3월 31일 일부개정·시행된 농지법에 따르면 농업진흥지역 밖 농지 소유상한은 3만㎡에서 5만㎡로 늘었고, 영농조합법인의 농지 소유상한 역시 조합원 수에 3만㎡를 곱한 면적에서 5만㎡를 곱한 면적으로 늘었다. 2002년 12월 농지법 일부개정을 통해 2003년 1월 1일 이후 농업진흥지역 밖 농지와 영농조합법인의 소유 농지 상한 자체가 없어졌으며 이때부터 주말·체험영농을 목적으로 할 경우 비농민도 1,000㎡ 미만의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이밖에 2006년 1월 22일부터는 한국농촌공사나 그밖에 대통령이 정하는 자에게 위탁해 개인이 소유한 농지를 임대하거나 사용대하는 경우 자기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더라도 농지를 계속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상속·이농 등을 통해 취득한 농지 역시 한국농촌공사나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에게 위탁해 임대하거나 사용대하는 경우 그 면적이 소유상한인 1만㎡ 이상이더라도 농지를 계속해서 소유할 수 있게끔 완화됐다.

또 기존 농업법인의 농지 소유는 △농업회사법인을 대표하는 자가 농업인일 것 △농업회사법인의 업무집행권을 가진 자 중 2분의 1 이상이 농업인일 것 등의 요건을 갖춰야 했지만, 2009년 11월 28일부터 업무집행권을 가진 자 중 3분의 1 이상이 농업인인 경우로 요건이 대폭 완화돼 최근 드러난 제주 농업법인의 농지 투기 근간이 마련됐다. 아울러 2009년 11월 28일을 기점으로 ‘한계농지’의 최상단부부터 최하단부까지의 평균 경사율이 15% 이상인 농지 소유제한이 풀렸고, 해당 조항은 2012년 1월 17일 일부개정 이후 ‘농업진흥 밖의 농지’로 문턱을 더욱 낮췄다.

이처럼 숱한 예외조항으로 무장한 오늘날의 농지법은 헌법 상 경자유전의 원칙을 거스르기 위한 하위법에 불과한 실정이다. 실제 농지법은 개정을 거치며 농사짓는 농민들이 농지를 소유하지 못하는 바탕이 됐으며, 농지가 투기 수단으로 전락한 이유로도 볼 수 있다.

 

6월 14일에 발행된 제25호 신문에선 농지 불법 전용이 늘어나고 있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6월 14일에 발행된 제25호 신문에선 농지 불법 전용이 늘어나고 있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벌어진 틈새, 사라지는 농지

2001년 6월 14일 본지 보도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2001년 상반기 특별교차단속 결과 농지 불법전용 131건(21.6ha)을 적발했다. 당시 농식품부는 2001년 상반기 적발건수가 2000년 단속건수 87건(9.1ha)에 비해 50% 늘어난 수치라고 밝혔다. 하반기 단속 결과까지 통틀어 2001년에는 3,959(473ha)건의 농지 불법전용 사례가 적발됐으며, 2000년 3,394건(443ha)과 비교해 건수와 면적은 각각 16.6%와 6.6% 증가했다.

농지 불법전용은 농지법 상에 명시된 예외를 제외하고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농지의 형질을 변경하거나 농지를 농업 이외의 목적에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농지전용 관련 제도는 1972년 ‘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농지법)’이 제정되며 비롯됐고, 농지전용은 2007년 7월 이후부터 규제를 점차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농지 불법전용이 합법으로 점차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농지 소유제한과 비슷하게 농지법과 시행령은 개정을 거치며 전용 규제를 계속적으로 완화시켰다. 축산물생산시설 부지를 농지 범위에 포함시켰고 농업진흥지역 해제 시 대체농지 지정제도를 폐지했으며 영농여건 불리 지역의 비농업인 소유 및 신고 전용을 허용하는 등 이전의 불법전용 사례를 합법으로 탈바꿈하는데 사실상 앞장섰다. 농업진흥구역과 농업보호구역에서의 행위제한 역시 2002년 3월 시행령 개정을 전후로 점차 완화 추세에 접어들었으며 농지전용신고의 대상과 규모도 지속 확대했다.

이에 오늘날 농지전용면적은 과거와 비교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187만6,142ha였던 농지면적은 2010년 171만5,301ha로 약 8.6% 감소했고 2019년 농지면적은 158만957ha로, 2001년과 비교했을 땐 15.7%, 2010년과 비교했을 땐 7.8% 넘게 감소했다.

이렇듯 20년 전부터 시작된 농지법 개악에 오늘날 농업과 농민의 설 곳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최근 직불제 개편 등의 농업 내외 여건 변화에 힘입어 농지제도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는 농업계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는 만큼 앞으로 농지제도가 나아갈 방향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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