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평 넘게 농사짓지만 유기질비료 지원 못 받는다”

대다수 정책·지원 사업, ‘농업경영체’ 등록 농지만을 기준 삼아
부재지주 세제혜택 위해 임대차계약서도 못 쓰는 경우 부지기수
사각지대 속 임차농민들 “허울뿐인 농지 제도 시급히 개선해야”

  • 입력 2020.12.13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유기질비료지원사업을 비롯한 정부의 여러 정책·지원사업에서 임차 농민이 배제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달 17일 제주도 서귀포시 하예동의 시설하우스에서 한 농민이 수확한 밀감을 바구니에 담아 옮기고 있다. 한승호 기자
유기질비료지원사업을 비롯한 정부의 여러 정책·지원사업에서 임차 농민이 배제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달 17일 제주도 서귀포시 하예동의 시설하우스에서 한 농민이 수확한 밀감을 바구니에 담아 옮기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가 지난 8일까지 유기질비료지원사업을 신청 받았지만, 농지를 임차해 농사짓는 농민 대다수는 본인의 경작면적에 필요한 만큼 유기질비료를 신청하지 못했다. 정부 정책과 지원사업 대부분이 그렇듯 유기질비료지원사업 역시 농업경영체 등록 농지만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실제 농촌 현장의 농민 절반 이상이 농지를 임차해 농사짓고 있는 만큼 제도 바깥에 놓인 농민들을 구제할 방안 마련이 절실해 보인다.

임차 농민 비중이 높은 제주에선 실제 많은 농민들이 유기질비료지원사업을 비롯한 여러 정책·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창건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사무처장은 “제주도가 화학비료 저감을 위한 관련 정책을 여러 모로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농민들은 화학비료 대신 사용할 유기질비료지원사업을 본인이 경작하는 농지 면적만큼 신청할 수 없다. 현재 시스템 상 농가경영체에 등록된 면적만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실제 농민이 해당 농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경작사실확인서로 증명하면 유기질비료지원사업 등 정책 혜택을 볼 수 있게 전산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귀포시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 농민 A씨의 경우 3,000평을 경작 중이지만 임차한 농지 1,500평은 직불금을 비롯해 유기질비료지원사업 등 여러 정책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A씨는 “그간 20년 정도 농사지었는데 임차 농지의 1년 수익이 1,000만원이라고 가정한다면 직불금과 지원사업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해 발생한 손해가 200만원 정도 된다. 부재지주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당장 농지 임차를 할 수 없는 처지에 처하기 때문에 혜택은 부재지주가 보고 피해는 농민이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다”고 전했다.

관련해 채호진 성산읍농민회 사무국장은 “제주도 내 대부분의 부재지주가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구매한 뒤 양도소득세 혜택을 보기 위해 8년 간 자경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민다. 부재지주가 경영체 등록도 하고 임차농이 대신 부재지주 이름으로 농약과 비료 등을 구매하기도 한다”면서 “임대차계약서를 써주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 경영체 등록은 못하게 한다. 임차 농민 입장에서는 당장 경작하던 농지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부재지주 뜻에 거의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채 사무국장에 따르면 성산리의 경우 약 160농가가 경영체 등록을 한 것으로 확인되지만 실제 경작하는 농민은 10명 정도에 불과하다. 농지원부를 만들고 경영체에 등록해 160명이 농사를 짓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놨지만, 약 94%가 부재지주란 의미다.

구좌읍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고광덕 제주당근연합회 사무국장은 “구좌읍에서도 마을 어르신들은 대부분 자경을 하지만, 경작 규모가 큰 젊은 농민들은 상당히 많은 농지를 임차해서 농사짓고 있다. 개인적으론 전체 중 90% 가까이 되는 농민이 임차농지에 농사를 짓는 것 같다”면서 “그럼에도 세제혜택 때문에 임대차계약서도 작성하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해 경영체에 등록해야만 자격이 되는 직불제나 여러 지원 사업에서 실제 농민은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기질비료지원사업 자격요건에 경작확인서 제출을 허용해달라는 전농과 농민들의 요구에 농식품부는 “유기질비료지원사업뿐만 아니라 농업 관련 보조금을 지원받으려는 ‘농업인’은 농어업경영체법에 따라 반드시 농업경영정보 등록을 필요로 한다”면서 “농산물품질관리원의 실경작 여부 확인을 거쳐 농업경영체 등록이 이뤄지며 농협경제지주에서 농업경영체 등록여부 확인 후 유기질비료를 공급하기 때문에 경작확인서 제출을 통한 유기질비료지원사업 신청은 불가하다. 현행 지원자격 및 요건이 유지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아 농민들의 공분은 한동안 수그러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