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념 보장 농정

  • 입력 2020.12.06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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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신념. 자신이 가진 사상이나 견해에 흔들림 없는 태도를 취하며 변치 않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념을 사회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실천하는 ‘신념의 강자’들에겐 존경하는 마음도 갖고 있다.

농민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선 농사도 신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농사란 일 자체가 기후위기 과정에서 더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임에도 그에 걸맞는 농가소득 보전책도, 농산물 가격보장 정책도 사실상 없는 것에 가깝다는 평, 내가 아니어도 다른 전문가들이 했으니 더는 말 않겠다.

문제는 지금 정부가 농민들이 ‘짓고 싶은 농사’마저 제대로 보장하려 노력 안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짓고 싶은 농사’의 범주엔 △농약·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농사(유기농사) △농약은 안 치고 화학비료도 아주 조금만 사용하는 농사(무농약 농사) △농약을 치더라도 아주 조금만 치고, 제초제만큼은 안 치는 농사(한때 ‘저농약 인증’이 주어지던 농사) △전통농법을 고수하는 농사 등등 다양하다.

위 범주의 농사들은 방식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농민들 입장에선 하나같이 어려운 길이다. 이러한 노력을 하는 농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정부는 교육을 하든, 지원을 하든, 기술보급을 하든,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엔 그런 구조가 만들어져 있나?

100년 동안 이어진 농약·화학비료 중심 농정. 생산량 늘리기 중심 농정. 국가(일제 조선총독부든 대한민국 정부든)는 농민에게 과거의 농사방식을 버리라 강요했고, 그 과정에서 농민은 소외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짓고 싶은 농사방식마저 빼앗기게 됐다. 국가의 표준 농업방식은 어디까지나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농업’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농촌진흥청도 이 표준농업 구조 속에서 만들어졌다. 과거엔 이 표준에서 벗어난 농민들을 탄압했다면 이젠 방치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농민의 신념이 보장되지 않는 농정이 이어지는 건 여전하다.

농민들은 제초제를 치고 싶어서 치는 게 아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치고 싶어서 치는 게 아니다. 정부(조선총독부든 대한민국 정부든)가 100년 동안 치라고 강요했다. 기후위기를 맞아 100년 동안의 표준에서 벗어나보려는 ‘신념의 강자’들이 뭐라도 해보겠다는데, 정부도 좀 변해야 하지 않나?

최근 채식이 단순히 사람의 기호문제가 아닌 ‘기본권’ 문제로서 거론되고 있다. 말하자면 채식도 신념의 문제다. 먹는 것을 바꿈으로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 아닌가. 마찬가지로 농사과정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하는 농민, 신념을 가진 농민에 대해 정부는 제대로 살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공익직불제 상의 선택형직불제 강화 관련 논의가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 이뤄지기 시작한 건, 늦긴 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쪼록 정부도 지난 100년의 표준농정을 벗어나, 농민의 신념을 보장하는 농정을 본격화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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