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전부 침수됐는데 … 배상 규정 없는 농어촌공사

의성·군위지사, 이모작 관개 요청으로 수문 개방
낙엽 등에 수로 막힌 데다 강우 겹쳐 피해 발생
공사 “피해 규명 어렵지만 대책 필요성엔 공감”

  • 입력 2020.12.06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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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달 20일경 수문 개방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군 가음면 일원의 밭 귀퉁이에 구종회씨가 석달 가까이 키운 모종이 널브러져 있다.
지난달 20일경 수문 개방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군 가음면 일원의 밭 귀퉁이에 구종회씨가 석달 가까이 키운 모종이 널브러져 있다.

 

농업용수와 수리시설 유지·관리를 도맡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사장 김인식, 공사)의 용수 및 시설 관리 부실로 피해가 발생해도 이를 배상할 근거 규정이나 지침이 전무한 실정이다. 때문에 현재로선 피해가 발생할 경우 지사에서 자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거나 피해 당사자인 농민이 민사소송 등을 제기해 배상을 강구하는 방법밖에 없다.

지난달 20일경 경북 의성군 가음면 일원의 밭 한 필지가 물에 잠겼다. 이웃 논의 수로가 막혀 연접한 밭으로 물이 흘러 넘쳤고, 2,000평 규모의 임차 농지에 대파 모종 입식을 앞뒀던 농민 구종회씨는 기르던 모판 대부분을 못쓰게 됐다. 뿐만 아니라 밭에 고인 물이 빠지지 않아 파종시기까지 놓쳐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다.

구씨와 공사 의성·군위지사 등에 따르면 의성·군위지사 동부지소(소장 이시대, 동부지소)는 지난달 4일 이장협의회로부터 농업용수 공급을 요청받았다. 지역에서 대부분의 농가가 마늘·양파 등을 논에 이모작으로 키우기 때문에, 그간 동부지소에서는 마늘 등 이모작 작물 파종이 끝난 뒤 11월 중하순 무렵 이장협의회 요구에 따라 용수를 공급해 왔다. 이에 동부지소는 이번에도 역시 수문을 개방해 물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구씨 밭과 연접한 논의 수로가 낙엽 등 이물질에 막혔고 그 영향으로 물이 넘쳐 구씨의 밭이 전부 잠겼다. 당시 구씨가 임차한 밭에는 지난 8월 25일경 파종한 모판 약 2,200개가 입식을 앞두고 있었다. 구씨가 직접 해당 밭에 파종할 것 외에도 지인 등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키운 모종이었다. 이에 최근 좋지 않은 마늘 가격에 대체작물 재배를 결심한 구씨의 지인 일부도 파종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구씨는 “밭의 물 빠짐이 좋은 편에 속해 서둘러 밭을 말려 모종을 입식하려 했다. 하지만 수차례 로터리 작업을 했음에도 여전히 깊은 곳엔 흙이 뭉쳐 입식을 못하게 됐고 계약판매를 약속한 대파 모종도 힘들게 키웠지만 모판이 물을 먹었기 때문에 심더라도 상품성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며 “피해 직후 민원을 제기하자 의성·군위지사와 동부지소에서 관계자가 다녀갔고 미안하다며 사과도 했지만 굴삭기나 인력 지원 외에 피해 배상은 못해준다고 말했다. 이후론 잘 만나주지도 않고 시간을 때우려는 것 같았는데, 전해 들으니 배상해줄 근거 규정도 없고 직원 하나 면책하면 끝난다는 식이었다”고 밝혔다.

구씨는 덧붙여 “한 해 농사를 망친 농민 입장은 아무도 고려하질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도 공사의 물 관리, 시설 관리 부실로 피해가 종종 발생하지만 매번 손해는 농민이 감수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례가 본보기가 되도록 모판 2,200개와 영농손실금을 배상하라는 입장이다. 더불어 공사에 관련 규정 마련도 촉구했다.

이시대 동부지소장은 “시설 관리가 부족했던 측면이 있지만 수문 개방 전 용수 공급에 대한 방송도 했고 두 명 밖에 안 되는 인력이 13개 면을 관리하다 보니 여건상 모든 부분을 세세하게 살필 수는 없는 실정이다. 또 배상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과 예산 자체가 없기 때문에 피해 발생 근거가 확실할 경우 지사나 지소에서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모아 배상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구씨의 요구는 너무 과하다”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공사 의성·군위지사나 동부지소 담당자 등도 적절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 보내고 있는 만큼 피해 농민과의 갈등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와 관련해 공사 관계자는 “사실 그간 피해가 발생해도 배상에 대한 근거와 관련 예산이 전무한 데다 피해 발생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피해 규모를 산정하는 게 어려워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라며 관련 규정 마련 등 대책 필요성에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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