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수확기 이후 정부양곡 37만톤 방출 결정

양곡위, 작년보다 23만7천톤·평년보다 50만5천톤 ‘쌀부족’
전농 광전연맹 “땜질식 양곡정책 대신 비상시 대비해야”
쌀농가 소득 감소 재난수준 … 정부 대책은 전혀 없어

  • 입력 2020.11.29 20:26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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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기상재해로 흉년이 들어 쌀 생산이 급감한 가운데 정부가 최대 37만톤 안팎의 정부양곡 방출 계획을 밝혔다. 평년보다 50만5,000톤 쌀이 부족한 시중에 공급을 늘려 가격을 내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재난수준으로 반토막 난 쌀 수확량에 농가들의 소득이 급감한 것에 대한 정책은 전혀 없는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는 지난 25일 양곡수급안정위원회(양곡위원회)를 열고 2020년산 쌀 수급안정 보완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쌀 생산량은 351만톤에 불과하다. 이는 전년보다 23만7,000톤, 평년보다 50만5,000톤이 감소한 상황이다.

이날 농식품부는 시중에 유통되는 쌀이 부족해 수급균형을 위해 시장방출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농식품부·기획재정부를 비롯해 전문가·농민단체·업계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양곡위원회는 심각한 쌀 공급부족 상황을 공유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양곡 방출에 동의했다.

회의 결과 농식품부는 정부양곡을 37만톤 범위에서 시장에 공급키로 했다. 다만 수요변화(2021년 1월 통계청의 쌀 소비량 발표)와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공급 계획물량을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급시기는 ‘가급적’ 수확기 이후로 하되, 일정 물량씩 나눠 한꺼번에 방출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우선 공공비축미로 매입 중인 산물벼(11.20 기준 8만톤)를 수확기 직후 산지유통업체에 인도해 원료곡 부족 민원을 해소할 방침이다. 이후 수급상황에 따라 단계적 공매를 추진한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재해지원금 지급, 정부비축미 방출 저지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정부비축미 방출 반대’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재해지원금 지급, 정부비축미 방출 저지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정부비축미 방출 반대’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박수진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부족물량은 가급적 수확기 이후에 공급하되, 정부가 공급하는 물량과 시기 등을 사전에 발표해 시장에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농업인과 산지유통업인 의사결정과 수급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평년보다 50만톤의 쌀이 부족하다보니 산지쌀값은 지난 15일 20kg에 5만3,955원으로 80kg 쌀 한 가마에 21만원5,0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수확기에 발표된 농식품부의 정부양곡 방출 소식은 한참 벼 수매가를 결정하는 지역에 인하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올해 유례없는 재해로 쌀 수확량이 급감해 농민들은 소득에 치명타를 입고 있다. 농자재비와 농지임차료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는 하소연도 차고 넘친다. 시중 쌀값이라도 높아야 부족한 생산량의 일부라도 소득으로 채울 수 있지만 정부의 이번 발표가 농협의 선지급금 결정 인하의 빌미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높다.

무엇보다 쌀 부족 사태에 대한 대비도 이번 기회에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입장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정부는 시중 쌀값 인하 방침 외에 내놓은 것이 없다.

이에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의장 권용식, 전농 광전연맹)은 정부의 쌀값 하락용 시장방출을 철회하라고 비판 성명을 냈다. 전농 광전연맹은 “‘수확기 이후’라는 조건이 달렸으나 재고미 방출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항의를 비껴가면서도 쌀 가격은 하락시키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정부의 행태를 꾸짖었다.

이어 “정부는 먼저 양곡정책의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그간 쌀 수급불균형 사태 때마다 나왔던 땜질식 처방을 비판했다. 또 “정부는 어설프게 시장에 개입해 쌀 가격을 조절하려 하지 말고 국민 주식이자 식량주권의 마지막 보루인 쌀의 생산과 유통에 대해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정책으로 전환하라”고 주장했다.

특히 전농 광전연맹은 “코로나와 기후 위기로 국제 곡물 값이 상승하고 각 국이 곡물수출을 금지하는 상황에 비상식량 비축은 절실한 과제”라며 “쌀, 보리, 밀, 콩 등 주요 곡물 150만톤을 선제적으로 비축해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시중에 쌀이 부족해 전농은 대승적 차원에서 ‘수확기 이후’ 즉, 설이 지난 2021년 2월 이후라는 단서와 최소한의 물량을 분산 방출한다는 조건을 붙여 정부 입장에 동의했다”면서 “하지만 농협은 정부 보유물량이 시장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재난수준으로 수확량이 감소한 농가를 위해 이번 정부양곡 방출을 핑계로 낮은 쌀값을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단호한 입장을 전했다.

특히 이 위원장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 하락을 꾀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상 정부의 이후 동향을 살펴 대정부 대응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리고 농협의 가격 결정과정에는 깊숙이 개입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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