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우금티를 넘어

  • 입력 2020.11.22 18:00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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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2_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지난달 31일, 공주 우금티 동학농민혁명 전적지에 자그마한 알림터(홍보관)가 개관됐다. 내가 근무하는 연구원이 공주에 소재하기 때문에 매년 몇 번씩은 우금티 전적지를 찾곤 한다. 특히 연초에는 그곳을 찾아 한 해의 마음을 다지곤 한다. 그런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동학농민혁명의 우금티 전투를 기념하는 것이라고는 전두환 정권 때 세운 기념탑 말고는 별다른 기념시설이 없어 늘 아쉬웠었다.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중요한 전적지가 홍보관 하나 없이 방치돼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이번 우금티 전투를 알리는 알림터 설립이 더 반가웠다. 공주에서는 처음으로 진보정당 출신이자 역사에도 관심 많은 분이 시장이 돼 이런 변화도 있나 싶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인내천(人乃天), ‘사람을 하늘처럼 섬긴다’는 사인여천(事人如天), ‘가진 자든지, 없는 자든지 서로 돕는다’는 유무상자(有無相資)의 사상을 바탕으로 ‘척왜척양’,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기치를 내걸고 동학농민군은 1894년 3월 고창 무장에서 기포를 해서 정읍, 전주, 논산을 거쳐 이곳 공주까지 왔다. 1894년 10월 23일 우금티 목전에서 벌어진 이인전투를 시작으로 효포전투(10.23~25), 대교전투(10.24), 옥녀봉전투(10.25), 다시 이인전투(11.8), 그리고 우금티전투(11.9~11)가 벌어졌다. 공주전투에서는 남접과 북접의 동학농민군이 참여했고 공주창의소 의병대장 이유상과 공주접주 장준환, 그리고 공주의 농민군이 합류해 전봉준 장군을 도와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화승총과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이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 초 드라마 ‘녹두꽃’에서 방영됐듯이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돌진했던 농민군은 40~50여 차례 공방전을 벌이다 결국 우금티 고개를 넘지 못하고 11월 9일 퇴각을 했다. 1894년 갑오년 1년 동안 조선 땅에서 약 3~5만명의 민중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됐는데 그중 우금티전투에서만 1만여 명이 희생됐다. 당시 사람들은 우금티를 넘지 못한 동학농민군에 대해 “무릎팍으로 내밀어도 나갈 수 있었는데, 주먹만 내질러도 나갈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역사를 조금 알게 되면서 우연 같은 필연의 일들을 가끔 겪곤 한다. 그중 하나가 내가 공주에 온 이유다. 2012년 11월 1일, 지금의 연구원에 처음 발령을 받고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제 고향은 전북 고창입니다. 저희 고향에서 출발한 수많은 동학농민군이 이곳 공주에 와서 희생됐습니다. 아마도 그 농민군의 원혼이 저를 이곳 공주에 부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때는 넘지 못했지만 연구를 통해 우리 농민들이 우금티를 넘어 농민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연구가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이다. 농민이면 누구나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세상을 희망했다. 가진 자든지, 없는 자든지 평등하게 대접을 받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억압하지 않는 그런 세상을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이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처음엔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았지만 그 목소리는 공명돼 번져나갔고 진보농민단체가 앞장서 줬다. 2017년 처음으로 충남도가 농업환경실천사업으로 그 뜻을 받아들였고, 2018년 해남군이 처음으로 농민수당 조례를 제정하고 2019년에 농민수당을 지급했다. 충남도는 올해 농가당 80만원의 농어민수당을 지급했다. 2020년이 저물어 가는 지금엔 거의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 제도를 받아들였다.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경북에서도 2022년부터 농민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도지사가 선언했다. 아직 조례가 통과되지 않은 경기도는 도지사의 뜻이 강한 만큼 조만간 조례가 통과돼 농민기본소득이 실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은 농민에게 얼마의 돈을 지급하는 것으로 끝나는 사업도 운동도 아니다. 그것은 농민이 지역의 주인으로서 자립과 자치를 만들어나가는 종자돈이다. 동학군이 세웠던 자치조직인 집강소, 해방 이후 주민 스스로 만들고자 했던 인민위원회를 다시 재건하는 토대인 것이다. 현재 농민기본소득과 농민수당으로 나눠진 운동진영도 동학의 남접과 북접이 결국 하나가 돼 싸웠듯이 하나가 돼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 입법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운동은 어느 한 쪽의 농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농민 모두를 위한 운동이다. 현재 각자도생의 농민단체들도 이 운동 앞에서는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 그래야 농민이 우금티를 넘어 사람이 하늘인 세상, 농민도 최소한 인간적 품위를 보장받는 세상, 가진 자든 없는 자든 서로 돕는 대동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희망의 길을 함께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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