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남사당⑧ 또 하나의 생존수단 ‘걸립(乞粒)’

  • 입력 2020.11.15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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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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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립(乞粒)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의 뜻을 풀면 ‘곡식을 구걸한다’는 의미다. 어떤 집단에서 특별히 경비를 쓸 일이 있을 때, 집집마다 다니면서 굿을 해주고 돈이나 곡식을 얻는 행위를 일컫는다. 마을에서 서당을 짓거나 다리를 놓거나 혹은 나룻배를 건조할 때, 그 경비 마련을 위해서 가가호호를 돌며 ‘걸립굿’을 했다.

걸립굿은 대문을 들어서면서 하는 문굿, 마당에 들어가서 하는 마당굿, 대청마루에서 하는 성주굿, 부엌에서 하는 정지굿 등의 순서로 짜인다. 육칠십 년대에 촌락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자주 구경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남사당도 걸립을 했다. 그런데 남사당패의 걸립은 사찰의 불사와 연관이 있다. 전쟁 통에 남사당패가 해체되는 바람에 나이 많은 남편과 단 둘이 유랑하던 박계순이, 어느 날 승복을 갖춰 입고서, 좀 있어 뵈는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선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삼각산 태고사에서 불상 걸립을 나왔습니다. 저는 남사당패의 하지입니다.

-권선문은 지참하셨습니까?

-예, 여기 있습니다.

-그럼 권선문에 쌀 한 말 적겠습니다. 같이 오신 일행도 함께 안으로 드시지요.

하지(下地)란 수행중인 보살이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말이다. 남사당패의 하지는 승복을 입고 고깔을 썼으며, 사찰 주지의 직인이 찍힌 권선문(勸善文)을 소지했다. 권선문은 보시를 청하는 주지의 글월이 담긴 문서다. ‘하지’인 박계순이 걸립 응낙을 받고나면, 남편 남형우가 문굿부터 시작하여 순서대로 걸립굿을 진행한다.

“무턱대고 대문 열고 들어가서 굿 해줄 테니 곡식이나 돈을 달라고 하면 그게 통하겠어요? 어느 사찰에서 범종을 만든다거나 불상을 건립한다거나 그런 명분을 제시하면 훨씬 수월하게 받아들여요. 물론 사찰의 주지 직인이 찍힌 권선문을 지참해야 되지요. 걸립굿을 해주고 받은 돈이나 양곡 중에서 4할 정도를 우리가 사찰로부터 배분 받습니다. 사찰을 끼지 않고 뜬걸립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아이고, 그건 어려워요.”

‘뜬걸립’이란 주지승의 권선문 같은 것 없이 그저 “좋은 일에 쓸 터이니 좀 보태 달라”고 호소하는 방식인데,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는 것이 박계순 씨의 증언이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오십 명이 무리지어 이 마을 저 동네를 유랑하던 고전적인 의미의 남사당은 자취를 감췄다. 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남사당패가 밥벌이 수단으로 펼쳐보이던 놀이들은 국가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지 않으면 그 맥이 끊길 상황에 이르렀다. 대표적으로 남형우-박계순 부부 등이 연행했던 남사당패의 덜미, 즉 꼭두각시놀음은 19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바 있다.

남사당 풍물패의 뜬쇠 출신인 윤덕현 씨는, 남사당에 한 번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여느 남자들처럼 한 곳에 정착하면서 지아비와 아비 노릇을 하는 건 불가능하더라고 토로한다. 그는 경기도 김포에 아내와 두 아들을 두었으면서도 가정은 나 몰라라 하고서 걸핏하면 꽹과리를 들고 가출을 일삼았다. 내가 취재 갔을 때(2000년 11월) 윤덕현 씨의 부인은 중풍으로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 하는 지경이었는데, 그 할머니가 비틀어낸 한 마디는 이러했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어. 저이 죽으면 널(관) 속에 꽹과리만 넣어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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