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 입력 2020.11.15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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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양식. 사전적 의미는 정해진 공간에서 안정적으로 먹이를 공급하며 물고기나 해조류를 인공적으로 기르는 일을 뜻한다. 반대말은 자연산이 될 것이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과 양북면·감포읍은 1983년 월성원자력발전소(월성원전)가 들어선 이후 40여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거대한 양식장’이 됐다는 게 지역 주민들의 전언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가 미끼를 주듯 각종 보상으로 지역주민들을 포섭해 혐오시설에 대한 잡음을 막아 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첨예한 갈등 속에 지역사회는 반으로 갈라졌다.

최근 확정된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조밀 건식 저장시설) 증설을 둘러싼 공론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맥스터 증설 찬성과 반대 현수막이 마을 곳곳에 내걸렸다. 또한 반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지역농협 조합장을 상대로 한 월성원전의 보복성 행위가 이뤄진 것이다.

애초 월성원전이 들어선 읍·면의 마을들은 바다와 맞닿아 자연경관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농촌마을이었다. 양식의 반대말처럼 자연산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겉보기엔 큰 변화가 없지만 그 속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지하수와 월성원전 인접 주민 소변검사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고, 키우던 소가 갑자기 쓰러졌다거나 어느 집 누가 암에 걸렸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져 있다. 마을 주민들의 분열 속에 결국 그 피해가 그들 자신의 몫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지역발전이나 경제부흥의 논리가 여전히 먹히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하나의 거대한 양식장이란 표현을 쓴 것도 그래서다.

이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도 주민들이 기댈 곳은 그리 마땅치 않다. 국회의원이나 시장 군수 등 정치인들도 세수와 지역경제 위기론을 앞세워 월성원전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허술한 공론화 속에 맥스터 증설을 확정지은 이른바 촛불정부의 모습은 주민들에게 공허함만을 남겼다.

월성원전 인접 마을엔 여전히 농민들이 있고, 농민조합원들이 십시일반 세운 농협도 있다. 수십년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후대들이 살아가야 할 땅이다.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아우성 속에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한 농협 조합장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도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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