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산물의 선진국형 가격결정 방식이 필요하다

  • 입력 2020.11.08 18:00
  • 기자명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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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숙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제2의 주식(主食)인 배춧값이 요동치고 있다. 3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그랬다. 왜 그런지는 거미집 이론(Cobweb Theorem)으로 쉽게 설명이 된다. 거미집 이론은 수요에 비해 공급의 변화가 느린 시장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균형가격을 찾아가는 과정이 수요공급 곡선 상에서 마치 거미집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농산물 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설명하는 데 자주 인용된다.

농산물의 특성상 공급을 급격하게 줄일 수 없기 때문에 풍년이 들면 농산물 가격은 하락한다. 초과공급 상태를 유지하게 되고, 가격은 균형가격보다 낮은 상태가 지속된다. 낮은 가격 때문에 농민들은 재배량을 줄이게 되고, 그 결과 공급이 감소해 초과수요가 발생한다.

초과공급과 초과수요가 반복되면서 가격의 폭락과 폭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거미집의 균형점을 찾아 시장을 빠르게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생산 관측, 유통 정보 등 통계에 의한 시의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IT 강국인 우리나라의 농산물 관측 정보량과 전파력이 미약하고, 그에 기반한 정책의 부재가 아쉽기만 하다.

국내 최대 물량이 모이는 가락시장에서 농산물 가격 급등락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폭락과 폭등이 지속되면 생산자도 소비자도 괴롭고 시장의 질(質)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적 비용도 수반된다. 농산물의 재배과정과 품질보다는 물량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경매는 ‘레몬시장(Lemon market, 겉과 속이 다른 레몬에 비유해 정보 비대칭으로 우량품은 사라지고 불량품만 남아도는 시장을 의미)’에 가깝다.

정보의 비대칭은 역선택(불리한 선택, 잘못된 선택)을 유발한다. 가락시장에 처음 출하하는 생산자의 농산물은 경매가격이 형편없이 낮게 매겨지는, 이른바 ‘가격 후려치기’를 당하기도 한다. 역선택이 빈번한 시장은 좋은 품질의 상품을 공급하려는 사람의 노력과 의지가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상품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복숭아시장(Peach market)’은 레몬시장의 반대개념으로, IT 기술의 발달로 상품 정보가 공유되면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소돼 좋은 품질의 상품이 적정한 가격에 거래되는 시장을 말한다. 상품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거래되는 상품의 품질도 좋은 시장을 뜻한다. 국내 2위 농산물 거래 시장인 강서시장은 복숭아시장일까, 레몬시장일까?

가락시장이 레몬시장이라면 강서시장은 복숭아시장에 가깝다. 강서시장을 이용하는 구매자는 만족도가 높다. ‘경매동’에서는 상품에 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일절 없고, 농산물도 경매 시작할 때 잠깐 볼 수 있으며 그마저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반면, ‘시장도매인동’에서는 농산물을 고르면서 맛도 보고 생산자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상품의 히스토리(history)는 물론, 신뢰감도 생기게 된다고 한다. 시장도매인제는 수의매매(도매상이 농산물 출하자 및 구매자와 협의하여 가격과 수량, 기타 거래조건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상대매매라고도 한다) 방식이다.

프랑스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헝지스 도매시장’은 수의매매로 거래하면서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생산지 출하자와 도매상은 농산물 수급 동향을 바탕으로 출하할 물량과 품위 등을 판단해 교섭 후 가격을 결정하고, 소비지 구매자와 도매상은 구매자의 구매량, 해당 품목의 수요 등을 고려해 상호 협의를 통해 가격을 책정한다.

헝지스 도매시장을 이용하는 출하자와 구매자, 도매상 모두 유통정보에 민감하다. 출하자, 구매자 모두 특정 도매상과 장기간 거래하는 경향이 강하다. 출하자와 도매상은 협상에 의한 거래를 기본으로 할 뿐만 아니라, 구매자에게 맞춤형 유통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산지 수집상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도매상은 품질 좋은 농산물을 확보하기 위해 산지와 직거래 비중을 높이고 있다. 또한 도매상 간의 경쟁으로 구매자가 필요로 하는 물량, 품질, 상품 구색, 배송 시간 등 구매자 맞춤형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주문 접수, 상품 세팅, 저장, 수송 등 모든 면에서 체계화된 업무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 지위를 더는 주장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는 식량문제를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가 됐다.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방안은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형 가격결정 방식을 가락시장에 도입해 경쟁체제를 갖추는 것뿐이다. 공공성도 강화해야 한다. 전남형 공영시장도매인제 도입이 중요한 이유다. 프랑스처럼 도매시장을 포함한 국가 푸드플랜과 지역(서울) 푸드플랜이 연결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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