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남사당⑦ 박첨지놀이

  • 입력 2020.11.08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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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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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

해방직후에 이승만이 특유의 억양으로 즐겨 구사했던 이 말은, 본래는 중국의 사상가 장자가 말한 ‘단생산사(團生散死)’를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6.25 전쟁이 터지자 남사당패의 꼭두쇠 남형우는 단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 많은 단원들이 뭉쳐서 몰려다니면 굶어 죽습니다. 각자 흩어져서 살길을 찾읍시다.

그래서 50여 명의 단원들은 뒷날을 기약하고서 둘씩 셋씩 패를 나누어 뿔뿔이 흩어졌다.

열아홉 나이에 ‘그저 굿판이 좋아서’ 고향인 충북 제천을 떠나 남사당패에 들어가, 빨래 등 허드레 일을 봐주다 스물두 살이나 위인 꼭두쇠(단장) 남형우의 청혼을 받아들여서 부부를 맺은 박계순 씨. 그는 옛일을 회고하면서 남형우를 남편이라 하지 않고 ‘할아버지’라고 칭했다.

“전쟁 통에 어디 가서 어떻게 얻어먹고 살까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할아버지는, 자기가 덜미의 대잡이인데 뭔 걱정이냐고 큰소리를 쳐요. 나는 뭘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나보고는 산받이를 하래요.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산받이 훈련을 받았지요.”

‘덜미’는 꼭두각시놀음을 이름이고, 그 인형 연기를 하는 사람이 바로 ‘대잡이’다. 대잡이는 무대의 포장 안쪽에 몸을 숨기고 손으로 인형을 조종하면서 입으로는 재담을 하는 연행자(演行者)다. 그런데 인형 혼자 지껄이면 재미가 없다. 포장 바깥의 청중석에서 인형의 말을 받아 대화를 이어나갈 사람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산받이’다.

20년 터울의 그 부부가 장차 밥벌이 밑천으로 삼을 인형극은, 꼭두각시놀음 중에서도 일명 ‘박첨지놀음’이라 불리는 연극이었다. 박계순은 남형우가 작성해준 대본을 받아들고 연습에 들어갔다. 박첨지놀음의 핵심은 해학이다.

-여보 영감, 어디 얼굴 좀 봅시다. 아이고, 팔팔하든 소시절에는 어여쁘고 어여쁘더니, 그동안 부엉이가 마빡을 쪼았소? 얼굴 여기저기에 털이 오붓오붓하구랴.

-뭣이라고? 원 별, 능글능글하고 갈롱갈롱한 년을 다 보겠네. 아, 그래, 사람이 늙으면….

-나 이 짓거리 안 할 라요! 대본에는 그런 말이 없는데 갈롱갈롱한 년이라고 욕을 하다니….

-허허, 꼭두각시놀이라는 게 그 맛에 하는 거야. 아, 사람들을 배꼽 잡게 웃겨놔야 밥을 주든 돈을 주든 할 것 아닌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연극이라니까 그러네.

남편의 설득에 박계순은 팽개쳤던 대본을 다시 집어 들었다. 참고로 ‘갈롱갈롱하다’는 말은 ‘요염한’ 혹은 ‘교태부리는’ 정도에 해당하는 경상도 진주지역의 사투리다.

드디어 어느 부잣집 마당에서 박첨지놀이의 실연(實演)에 들어갔다. 마당 가득 모여 선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광목휘장을 친 무대 쪽을 바라본다. 집나갔다 돌아온 박첨지를 아내가 맞는 장면이다.

-당신 집 나가고 나서 수십 년 동안 얼개빗 사이사이, 참빗 등등이를 찾아 헤매고 댕겼는데, 어디 숨었는지 찾을 수가 있어야지요. 아이고, 강원도 개미굴에 들어가서 도토리 밥을 해먹었는지 얼굴이 그냥 빡빡 얽었구랴.

-원 세상에, 별 능글능글하고 갈롱갈롱한 년을 다보겠네…(청중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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