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소외시키는 식품안전, 쓰레기통에 버려라

  • 입력 2020.11.01 18:00
  • 기자명 유병덕 이시도르 지속가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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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 소장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 소장

유감스런 백서

2017년 여름에 일어난 일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나라 전체가 먹거리 안전의 증후군에 시름하던 일, 이른바 ‘살충제 계란’ 사건이다. 당시 언론들은 이 일을 마치 계란을 먹으면 당장에 큰 병에 걸려 쓰러질 것처럼 보도했다. 어떤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비펜트린’과 ‘피프로닐’이 검출된 것이 발단이었다. 기준치는 각각 0.02ppm과 0.01ppm이었는데, 검출량은 0.04ppm과 0.02ppm으로 기준치를 초과했다. 이 일이 보도되자 소비자들은 시장에 진열된 계란에 공포를 느꼈고 구매율이 급감해 그해 6월 10개 2,000원대 하던 계란이 9월 1,200원대로 추락했다.

정부는 사태를 급히 수습하고 국민 불만을 잠재우려 연일 보도자료를 내고 브리핑을 개최했다. 하지만 공포는 쉬이 잦아들지 않고 국민의 불만은 높아져 갔다. 반찬, 빵, 과자의 원료로 흔히 먹는 계란에 이런 일이 생기니 국민은 당황할 만했다. 곳곳에서 “세상에 먹을 것 없다”는 푸념이 들리고 불안한 먹거리를 만들어 유통하게 하는 생산자, 관련 업체, 관리당국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져 갔다. 여름에 일어난 일이 잠잠해지기를 늦가을까지 기다려야 했다. 사실 농관원 등 관리당국과 친환경 농민들은 그 일을 수습하느라 이듬해 가을까지 고초를 겪었다.

불만이 좀 누그러졌을 때 정부는 그 일이 진행된 과정과 개선대책을 백서에 담아 발표하겠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지만, 먹거리 안전 문제를 개선해 우리 먹거리의 질(質)을 향상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계란사건백서’를 공동으로 작성해 2019년 1월에 국민 앞에 내놓았다.

하지만 백서의 수준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이게 그렇게 큰 사건을 겪은 대한민국의 백서라니, 자료의 깊이와 수준에 한숨이 나온다. 사건의 본질을 통찰한 내용은 보이지 않고, 사건 전의 먹거리 관리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이 더 심하게 통제하겠다는 계획이 있을 뿐이다. 실험실 검사에 의존하고, 농민과 작은 기업에 으름장 놓는 먹거리 관리를 언제까지 유지하려는가? 온 국민이 겪은 큰 사건을 제도 발전의 계기로 만드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백서를 평가해 그것의 한계를 공유해야 한다.

사건의 본질은 위험소통의 실패

일부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된 것으로 온 나라가 먹거리 공포에 빠질 수 있는가? 정부는 사건이 터진 8월 산란계 농가 1,239호를 전수 검사했고 그중 52개 농가의 계란에서 피프로닐, 비펜트린, 플루페녹수론 등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검출률이 약 4.2%이고, 부적합률은 이보다 조금 더 낮다. 즉, 95.8%의 계란은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통계학에서도 5% 이하의 오류는 인정해 95% 이상의 구간의 신뢰도에 더 의미를 둔다. 100점이 아니면 실패로 여기는 우리 문화가 당시 계란 전부를 실패작으로 규정한 것이 아닐까? 52개 농가에서 나쁜 화학물질이 검출됨으로써 사람들은 나머지 1,187개 농가의 계란까지 의심하고 기피했다.

계란에서 피프로닐이 검출되는 일은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에서 먼저 발생했다. 그해 8월초 유럽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린 후 8월 중순 우리나라에서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유럽의 나라들도 문제의 계란을 추적하여 유통에서 회수시키고, 문제의 계란을 원료로 사용한 와플 등 가공식품도 회수 조치했다.

하지만 이런 절차는 문제의 계란에 대해서만 집행해 소비자가 공포에 쌓이는 일로 확산하지 않았다. 위험을 제거하는 일에 여러 계층의 협력과 이해가 필요하므로 상황을 공유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는 계란은 계속 유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식품안전을 위해 위험을 인지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그 일을 침착하고 정확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위험에 대한 정보를 교환할 때 주의해야 한다. 두려움을 조장하는 위험소통은 잘못된 것이다. 막연한 기피와 무고한 이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위험소통은 폭력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의 제19호 규범에서도 “긴급한 식품안전의 문제가 발생할 때 생산, 유통, 소비 관계자들에 소식을 알리되 문제가 되지 않은 동종의 식품에는 부당한 조치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살충제 성분과 같은 나쁜 화학물질은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을 대할 때 과도한 두려움에 지배돼 합리성을 잃는다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한다. 위험 자체도 조심해야 하지만, 위험을 언급하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 2017년 여름 95.8%의 산란계 생산자는 억울했다. 약자였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정부가 위험을 처리할 때, 그 조치는 엄격하고 강력해야 한다. 동시에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위험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포와 동요가 발생하지는 않도록 최선의 소통 전략을 세워야 한다. 선의의 생산자를 보호하지 않고 소비자 안심만을 목적으로 소통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백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살충제 성분 검출 상황과 농가 정보, 조치 경과, 위해 평가 등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공개하여 사회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소비자 불안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 합동 보도자료 배포로 신속한 정보 제공.”

위험소통의 목적이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소비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위험소통은 대중이 위험을 인식하면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백서에는 이렇게 써야 했다.

“산란계 생산자 전수의 계란을 검사한 결과 4.2%인 52농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고 95.8%인 1,187농가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다.”

“언론은 52농가의 검출만을 보도해 대중이 동요했다.”

2017년 8월 24일, 닭 8,526마리와 계란 2만1,538개가 폐기처분됐다. 경북 영천시 한 친환경 산란계농장의 닭과 유정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DDT가 발견됐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승호 기자
2017년 8월 24일, 닭 8,526마리와 계란 2만1,538개가 폐기처분됐다. 경북 영천시 한 친환경 산란계농장의 닭과 유정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DDT가 발견됐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승호 기자

또 다른 중대 사건에 한 마디 언급이 없어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된 사건은 성격이 다른 종류가 하나 더 있었는데, 다른 종류의 사건에서 이성을 더욱 상실한 심각한 과잉대응이 나타났다. 백서는 그것을 언급하여 식품안전을 위한 과잉대응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조언했어야 했다. 하지만 백서에는 한 마디 언급이 없다.

그 사건은 바로 계란에서 DDT가 검출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비펜트린, 피프로닐이 검출된 사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비펜트린 등이 검출된 이유는 케이지에 닭을 가둬 공장식으로 기르면서 기생충이 생기자 사육장 안에서 살충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반면 DDT가 검출된 계란은 개방된 농장에서 자유롭게 방사한 토종닭의 것이었다. DDT는 30여 년 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전역에서 퇴출된 살충제인데 2017년 여름에 방사유정란에서 검출된 것이다. 언론은 이 일을 자극적으로 보도했고, 소비자들은 경악했다.

그리고 관계자들은 당황했다. 최고의 동물복지를 실천하던 생산자, 먹거리 건강을 추구하던 생활협동조합, 생산지를 관할하던 지자체, 먹거리 안전을 관리하던 정부기관들은 모두 하루아침에 죄인이 됐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주장은 더욱 위축됐다. 30년이 넘은 살충제가 흙에 남아 있으니 차라리 케이지에 닭을 가둬 공장식으로 생산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인가?

백서는 이 사건을 언급하기를 기피한 것인가, 이 사건의 본질을 몰랐던 것인가? 백서에는 비펜트린, 피프로닐 검출 사건만을 다뤘다. 그렇게 쓰는 것이 편리할 수도 있겠다. 생산자를 위험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그들을 더욱 통제하고 징벌하자는 프레임은 소비자 설득에 효율적일 것 같으니. 백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축산물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되는 등 중대 위반 행위를 한 인증 농가에 대해서는 인증을 취소하고, 반복적인 위반 행위 농가에 대해서는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퇴출할 수 있도록 관계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살충제 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자를 통제하고 징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서는 농약 성분이 검출되는 것과 생산자가 위반 행위를 한 것을 같은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 백서는 ‘농약을 살포하지 않으면 농약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참이 아닌 거짓의 명제임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DDT는 생산자가 살포한 것이 아니다. 과거에 사용한 것이 토양에 잔류했다가 닭이 흙을 삼켜 체내에 축적되고 계란에서 검출됐던 것이다. 계란에서 검출된 DDT는 식약처의 기준치 0.1ppm보다 농도가 낮은 0.028ppm과 0.047ppm이 검출돼 식품안전 기준에 적합한 계란이었다. 당시 친환경축산물 인증기준에는 살충제 검출 기준이 없었으므로, 친환경 기준에도 적합한 계란이었다.

이처럼 귀책이 생산자에 있지 않은데 생산자가 먹거리 위험의 원인이라도 되는 듯 지목 당했다. 그가 자유롭게 방사한 닭은 케이지에 가둔 닭보다 나쁜 닭이 됐다. 그 일로 정상 제품인 계란은 폐기되고, 닭은 살처분되고, 농장은 문을 닫았다. 이러한 과오는 백서에 기록해 비의도적 농약검출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찾는 계기를 마련해야 했었다. 백서는 이렇게 써야 했다.

“30여 년 전 사용이 중지된 DDT 성분이 검출됐으나 식품안전 기준에는 적합했다.”

“농약 성분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발생해 생산자가 친환경적 산란계 사육을 포기했다.”

“방사한 닭들은 DDT가 검출됐다는 이유로 모두 살처분했다.”

계란에서 비펜트린 등이 검출된 이유는 케이지에 닭을 가둬 기르면서 기생충이 생기자 사육장 안에서 살충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한 산란계농가의 계사 모습. 한승호 기자
계란에서 비펜트린 등이 검출된 이유는 케이지에 닭을 가둬 기르면서 기생충이 생기자 사육장 안에서 살충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한 산란계농가의 계사 모습. 한승호 기자

식품안전은 농민 행복과 동의어

백서가 주장하는 계란 안전 관리 개선 방향은 농약검사 체계를 강화하고 생산자를 더욱 강하게 통제하자는 것이다. 생산자를 통제하면 식품안전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소비자가 농약에 노출되기를 꺼리니 생산자는 사용하지 말라는 요구는 주장하기 쉬운 값싸고 단순한 정책이 아닌가? 소비자가 생산자보다 더 많고 더 강하므로 정부는 소비자가 듣기 좋은 프레임을 내려놓기 어렵겠다.

하지만 단순하고 일방적인 통제 정책은 생산자의 기본권과 사회적 평등을 무너뜨린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땅은 안전한 농산물의 터전이 될 수 없다. 존중받지 못하는 동물과 생명체는 안전할 수 없다. 존경받지 못하는 생산자가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식품안전’을 농민의 인권보다 중요시해 온 과오를 돌아봐야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단가에 맞추기 위해 부득이 농약과 비료를 사용해야 했던 농민을 이해한 적이 있는가?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생산하려 했던 농민을 진심으로 존경했는가? 정책당국이 소비자가 먹는 음식에 잔류하는 미량의 농약성분을 걱정하는 만큼 농민의 건강을 걱정해 준 적이 있는가?

이번 백서는 농민 존중이 결핍돼 있고 농민 소외를 당연시 하는 시각에서 작성된 것이다. 식품 위험을 약자의 탓으로 돌리고, 개선 방법을 약자의 부담으로 만드는 신자유주의 식품안전 정책으로는 건강한 농촌과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이번 ‘계란사건백서’는 식품 위험의 근원이 되는 공장식 생산체계를 건강한 체계로 바꾸기 위한 화두를 던져야 했다. 농민을 일방적 식품안전 정책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일을 멈추고 평등한 위험소통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야 했다.

‘농민농업’은 농업생태계를 돌보며 지속가능하게 농사짓는 농업이므로 ‘자본제 농업’이나 ‘경영자 농업’에 비하여 살충제로부터 더 자유롭다. 우리 사회는 한낱 DDT라는 성분 하나에 이성을 잃고 농민농업을 하려했던 농가를 구하지 못했다. 백서는 생산과 유통의 대량화를 전제로 농민을 통제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우리는 백서를 다시 써야 한다.

안전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땅의 가치를 인정하고, 생명을 존중하고, 농민을 존경하면 된다. 통제하여 성취할 수 있다는 구시대적 식품안전 정책은 이제 쓰레기통에 버려라.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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