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1천 평 논에서 나락 4포대 수확

  • 입력 2020.10.25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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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가을걷이가 일찍 끝났습니다. 가을비는 떡비, 봄비는 일비라고, 가을비가 내리면 모든 일을 멈추고 떡을 해 먹으며 쉰다는데, 세 차례의 연이은 태풍 이후에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은 통에 단 한 차례의 휴일도 없이 일하게 돼 가을일이 일찍 끝나게 된 것입니다.

일이 일찍 끝나서 좋기는 하나, 월동작물이 또 걱정입니다. 가을에 작물을 좀 키워놓아야 뿌리가 튼실해져 겨울에 동해를 덜 입게 되는데 한 달 넘도록 비가 안 내리니 올 겨울은 또 어떻게 넘길지 걱정입니다. 걱정, 걱정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또 양면성이 있습니다. 걱정이 역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기능이 있다는 것이지요.

걱정 않는 태평쟁이 보다 걱정 많은 부지런쟁이가 살림을 깐지게 해내는 이치가 그런 것입니다. 물론 걱정한다고 해결될 리 만무한 일이 더 많고,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대비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내일을 걱정하며 준비해왔기 때문에 그 억겁의 세월을 이나마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을걷이 중 논농사 결산을 올려 볼까요? 대략 4,000평 정도의 논농사를 짓는데, 1,000평에서 조곡 40kg 딱 네 포대만 나왔습니다.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물론 멸구피해를 입은 까닭입니다. 우리 집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역의 상당수 농가가 이런 피해를 입었습니다.

멸구약을 연거푸 4번을 쳐도 잡히지 않더라는 이야기며 산골논이 더 심하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애써 서로를 위로했지만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1995년도부터 농사를 접했는데, 그러면서 더러 멸구한테 군데군데 폭탄맞은 논들을 봐 왔지만 이토록 처참하게 주저앉는 것은 처음 봤고, 농약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도 본 적이 없습니다. 멸구 먹은 논뿐 아닙니다. 다른 논의 나락들도 수확량이 10~30%이상 감량됐습니다. 유례없는 긴 장마로 일조량이 떨어져서라고 봅니다.

당장 올해 농민들의 소득이 감소하는 것이며 전체 식량생산에 차질이 나는 것도 걱정입니다만, 문제는 이 상황이 올해만 국한된 문제인지 아니면 기후위기가 가져온 재앙인지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례 없는 장마나 갈수록 강력해지는 태풍, 대책 없는 병해충으로부터의 농업피해를 걱정하며 그럼에도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해낼 수 있는 장치는 무엇인지 툭 까놓고 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대놓고 농식품부 산하에 기후위기 대응 전략팀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그린뉴딜이라는 이름의 농정 속에 쪼개진 정책으로 환경문제를 조금씩 건들 것이 아니라 식량자급률부터 생산방식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나 펜데믹 상황에서 사람중심의 농업으로 재고해야 할 적기라고 주장할 법한데 그 목소리가 안 들립니다. 이 무슨 천하 태평쟁이들의 놀음인가요? 누가 대신 나라 살림을 해 준답니까? 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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