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남사당⑤ 무동(舞童), 춤추는 사내아이

  • 입력 2020.10.25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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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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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놀이 중에서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는 구경거리 중 하나가 ‘무동놀이’다. 어린 남자 아이가 어른의 어깨위에 올라선 채로 춤을 추면서 마당을 도는 놀이다.

‘무동(舞童)’은 놀이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어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춤을 추는 그 아이를 일컫는 호칭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성으로서 꼭두쇠 남편을 따라 오랫동안 남사당 활동을 했던 박계순 씨에 따르면, 단원들 사이에서는 무동춤을 추는 그 아이들을 미동(美童)이라 불렀다고 한다. 생김이 곱상한 아이들을 무동으로 뽑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나의 남사당패 안에는 예닐곱 명 가량의 무동들이 있었다. 이들은 보통 남사당패가 지방을 떠도는 중에 거리에서 만나 자연스레 유입되었는데, 오갈 데 없는 고아이거나 혹은 빈한한 가정 출신의 가출소년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무동들 중엔 그저 굿판이 좋아서 번듯한 가정을 뛰쳐나와 기를 쓰고 남사당을 따라나선 아이도 있었다. 간혹 수소문 끝에 가족이 데리러 오기도 했지만, 이미 ‘굿판에 미쳐 있어서’ 순순히 가족을 따라나서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무동놀이가 한창인데 구경하던 마을의 한 노인이 무동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허허허, 무동 고놈 참 이쁘게도 생겼다. 얘야, 내가 동전 줄 테니까 와서 받아가거라! 너 말고, 거기 이쁘게 생긴 놈, 너 말이야, 그렇지. 너 일루 와서 동전 받아가거라!

노인이 어른의 어깨에 올라 춤을 추고 있는 무동을 가리키면서, 동전을 주겠으니 ‘와서’ 받아가라고 한다. 노인은 어떻게 동전을 건네고, 무동은 그걸 또 어떻게 받았는지…박계순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나면 조금은 놀랍고도 불편하다.

“미동들 중에서 이쁘장하게 생긴 아이를 불러서 마을 노인이 돈을 주는데 어떻게 주느냐면…담뱃진이 누렇게 배인 위아래 이빨 사이에다 동전을 물고 있으면서, 아이한테 입으로 물어서 받아가라고 해요. 그뿐인 줄 아세요? 놀이가 모두 끝나면 동네 할아버지들이 미동 한 명씩을 자기가 데려다 재우겠다고 하룻밤 빌려 달라고 해요. 남사당에서는 돈을 받고 빌려주지요. 그럼 아이는 그 집에 가서 시키는 대로 재롱도 떨고 술래도 돌고 뭐 그러지요.”

나는 박계순 씨에게 ‘술래를 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남사당이 ‘천민 유랑집단’으로 인식되었던 당시의 세태를 감안한다 해도…듣기만 해도 거북하고 민망스런 아동학대의 폐습이었다.

남사당패에 들어온 아이는 처음엔 잔심부름을 하면서 무동춤을 추다가, 차차 소구놀이나 장구 치는 법을 어깨너머로 익히고, 이윽고 꽹과리 등 더 높은 수준의 기예를 배워서 남사당패의 단원으로 성장한다. 무동들은, 남사당패의 기능을 어느 정도 익혀서 ‘가열’이 되기 이전까지는, 여장(女裝)을 하는 것이 상례였다. 남사당의 단원들 사이에서는, 예쁘고 잘 생긴 무동을 서로 차지하여 귀여움을 베풀어주려고 경쟁이 치열하였다. 뿐만 아니라 남사당 내부에서 동성애가 성했다는 내용들은 관계 문헌에도 자주 등장하고 생존자들의 증언으로도 뒷받침된다.

이튿날, 아침을 얻어먹고 나서는 떠날 채비를 한다. 꼭두쇠와 이장이 작별인사를 나눈다.

-잘 놀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저기 사립밖에 쌀 한 가마하고 보리쌀 한 자루 꾸려놨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한 번 찾아오세요.

-어이구, 이거 감사합니다. 얘들아, 이장님 댁에 가서 지신밟기나 한바탕 해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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