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메뚜기도 한철

  • 입력 2020.10.18 18:00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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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시골집의 새벽은 낮보다 소란하다. 봄이 되면 산양의 짝을 부르는 소리가 또 여름이면 고라니의 고약한 소리와 밝아지는 여명과 함께 울리는 매미떼의 합창이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그리고 가을 새벽을 맞이한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집의 모든 창은 닫히고 밤새 내려간 온도를 감지한 똑똑한 보일러는 덜커덩 소리를 내며 먼저 돌아가기 시작한다.

집 주변이 워낙 조용한 탓에 보일러 소리가 크게 들리기도 하지만 연료는 곧 돈이라 한없이 돌아가는 보일러 소리는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빨리 꺼야지.”

모심기 몇 달 만에 들판은 누렇게 물들어가고 그것도 금세 추수되고 있는 논이 하루하루 늘어간다. 올해는 얄궂은 날씨 탓에 벼들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예년보다 수확기가 빨라졌고 고생한 탓인지 벼 수확량은 많이 줄었다. 어느 농업연구기관에서 평균 수확량이 1.6%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는데, 그 수치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16%이상은 준 것이 아닌가 할 정도다.

우기로 가득 찼던 날씨가 예고했듯 콩이나 고추는 작황이 나쁘고 사과는 그야말로 금사과가 됐다. 고구마는 올해 웬일로 산돼지의 습격을 받지 않았는데 밭에 가서 캐보니 엄지손가락만한 크기가 겨우 달렸다.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이렇게 가을은 깊어간다.

며칠 전 큰아들이 아침부터 집을 나서 메뚜기를 잡아와서는 통을 내밀며 요리를 해달라는 것이다. 귀찮기도 하고 대략 난감하기도 해서 “메뚜기 볶아줄까?” 하니 고개를 끄떡거린다. 아이는 메뚜기가 맛보고 싶은데, 엉뚱하게도 나와 남편은 메뚜기를 보며 저마다 기억을 떠올렸다.

어릴 적 메뚜기를 잡아 볶아서 팔았던 기억, 그 돈으로 신발과 고등어를 샀었던 일, 메뚜기 요리는 먼저 쪄서, 볕에 말린 다음에, 메뚜기 속 날개를 제거하고 볶아먹어야 맛있다는 이야기까지 얘기를 나누느라 정작 그 메뚜기는 요리되지도 못하고 통째로 현관으로 유배돼 있다 며칠이 지나버렸다. 아이의 노동이 수포로 돌아가서 메뚜기통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메뚜기를 다시 잡아 찌고 말려서 볶아줘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갈수록 이상해지는 기후를 농민들은 가장 먼저 삶으로, 소득으로 겪고 있다. 쌀이 남아돈다는 예측은 수요가 줄어들 것이므로 쌀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전망으로 여전히 단순하다. 지난 초봄까지 작년에 수확된 사과저장량이 많다고 사과값이 폭락하고 헐값에 사과가 거래됐다. 코로나19 발생으로 사과 수요는 늘었고 한 달 사이 사과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식량자급률이 인구의 4분의1도 못 먹이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별 문제가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메뚜기마저도 한철, 풍족한 것도 한철일 수 있다. 돈만 지불하면 농산물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생각과 착각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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