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남사당④ 그날 밤 남사당, 이렇게 놀았다

  • 입력 2020.10.18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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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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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를 마친 가을 저녁, 시골 전통마을의 널찍한 부잣집 마당에 불빛이 환하다. 한가운데에 모닥불이 지펴지고, 마당의 좌우 양쪽으로는 솜방망이에 붙은 기름불이 활활 타오른다. 저녁밥을 먹자마자 삼삼오오 몰려나온 동네 사람들이 담장 안쪽으로 겹겹이 둘러앉거나 서서, 안마당에 또 하나의 도톰한 담장을 만들었다.

이윽고 공연복으로 갈아입은 남사당 단원들이 등장한다.

-자, 저녁밥을 배불리 얻어먹었으니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세!

풍물패의 상쇠가 꽹과리 소리로 신호를 하자, 이어서 북장구 소리가 어우러져 한바탕 굿판이 벌어진다. 구경꾼들도 덩달아 어깨를 들썩거린다. 내가 만났을 당시(2000년 가을) 국립국악원에서 풍물단을 이끌고 있던 국악인이자, 남사당의 산 증인인 박계순 씨의 아들이기도 한 남기문 씨는 ‘남사당 농악’을 이렇게 설명한다.

“남사당패의 풍물은 보통은 경기도와 충청도의 가락인 ‘웃다리가락’을 바탕으로 한 농악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워낙 여러 지방을 떠돌기 때문에 특정 지역 색을 띠지 않는, 말하자면 여러 지방의 흥취를 두루 망라한 잡탕 식 농악이었어요.”

남기문 씨는 남사당 단원인 부모 밑에서 무동춤부터 익힌, 말하자면 남사당 2세였다.

풍물놀이로 막을 올린 굿판은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의 놀음으로 이어진다. 앵두나무 막대기 끝에 대접이나 양철대야를 올려놓고 돌리는 묘기를 ‘버나놀음’이라 했다. 놀음이 진행될 때면 관객들은 엉덩이를 들썩들썩, 손가락질을 하며 연신 소리소리 질러댔다. “어어, 저기, 저놈 떨어진다!” “저쪽 접시 빨리 돌려요!” “아이고 이쪽 대접 떨어져 깨지겠네!” … 탄성과 웃음소리로 농촌마을의 가을밤이 들썩거렸다.

이어서 서양의 텀블링을 연상케 하는, 땅 재주넘기인 ‘살판’이 펼쳐진다. 재주를 잘 넘으면 살판이요, 못 넘어 자빠지면 죽을 판이라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또 다른 묘기인 외줄타기를 ‘어름’이라 한 것도, 줄타기가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험하다는 뜻에서 비롯된 말이다. 한자(漢字)가 판치던 조선시대에 성행했음에도, 남사당에서 연행하는 놀이들이 이렇듯 우리말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것은, 그것들이 하층민으로 천대받던 사람들의 연희였기 때문일 터이다.

남사당놀이에도 쉬어가는 막간(幕間)이 있다. 하지만 멀뚱하게 앉아서 기다릴 수야 있나.

-자, 술이 나왔습니다. 막걸리가 나왔어요! 거기 꼭두쇠 양반도 한 바가지 마셔보더라고!

막걸리 동이가 마당 한가운데로 들려나오고, 마을사람들과 굿판을 벌이는 남사당패들이 너나없이 섞사귀며 막걸리를 바가지째로 벌컥벌컥 들이켠다. 옛적 남사당의 풍물패 뜬쇠 출신이었던 윤덕현 노인의 얘기를 들어보자.

“술상이니 술잔이니 뭐 그런 게 어딨어요. 술독을 마당에 내놓고 단원과 구경꾼들이 그냥 바가지로 마구 퍼서 마시는 거지. 그래서 남사당놀이를 ‘바가지 놀음’이라고도 불렀어요.”

그렇게 보면, 놀이꾼과 구경꾼이 하나가 되어 막걸리 바가지를 주거니 받거니 했던 그 시간은 그저 쉬어가는 막간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남사당놀이의 또 하나의 막(幕)이 아니었을까.

-자. 맛난 술도 얻어 마셨으니 다시 기운차게 놀아보더라고!

이어지는 공연은 덧뵈기와 덜미다. ‘덧뵈기’는 탈을 쓰고 하는 탈놀음이고, ‘덜미’는 인형극이다. 인형의 목덜미를 잡고 연극을 한다 하여 인형극을 ‘덜미’라 불렀다.

시골집 마당의 가을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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