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촌에서 나이듦에 대하여

  • 입력 2020.10.09 22:01
  • 기자명 강정남(전남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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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남(전남 나주)
강정남(전남 나주)

일단 추석이 지났으니 나주 배농가들은 잠깐이지만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면 하고 싶은걸 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맘대로 되지 않나보다. 친구는 나이가 들며 건강을 더 챙기는데 중부지방에만 살이 몰린다며 걷기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나가기가 싫어졌다고 한다.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게 우리네 농민들 생활이지만 농번기 때 허천나게 돌려버린 몸이 여기저기 망가지니 운동보다는 병원 가는 날이 더 많다.

아침저녁으로는 추워서 몸도 마음도 오그라들고 자꾸 하던 모든 일들이 하기가 싫어진다. 한 해 한 해 달라지는 몸을 느끼며 산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파릇한 봄날이 왔다가 무성한 여름을 지나 알곡을 맺는 가을을 거쳐 다음 봄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는 겨울처럼 인생도 무수한 그래프를 그리며 살아가는가보다. 올해는 날씨가 도와주질 않아 농사도 많이 망쳐버렸고 그만큼 수입도 줄어들었으니 다시 꽁꽁 언 겨울처럼 살림을 아껴서 살아야 되니 이것저것 몸만 바빠진다.

나의 또 다른 친구이자 동생은 갱년기 방황 중이시다. 예전 같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인해 많이 힘들어 하는데 옆에서 힘이 돼 줄 남편은 무심해서 그런 것들을 이해해 주지 못하니 더 속이 상하나보다. 호르몬의 변화를 견뎌야 하는 여성의 몸은 그야말로 복잡하다. 이럴 땐 이해가 아니라 무조건 잘해줘야 한다. 사람은 가까운 데서 행복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가깝다고 생각되던 사람이 자기 마음을 몰라주니 그 힘듦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나이 들어 인생을 나란히 같이 걸어가는 사람은 부부이다. 농촌에서 일만 하다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생각할 시간도 겨를도 없이 둘 다 늙으니, 그저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겁다. 여성농민은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처지와 조건이 아니었다. 이제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인생 제2의 스타트를 끊어야 하는데 각자 다른 것을 바라보니 인생이 힘들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하고 서로를 챙기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건강한 농산물을 키워내고 조금만 여유 있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왜 그런 삶을 꿈꾸고 얘기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걸까! 철마다 시키지 않아도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잘 알면서 정작 내 삶을 놓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얘기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이제 남은 인생 우리 여성농민도 행복한 삶을 꿈꾸고 얘기하고 요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여성농민회의 역할이 막대하다. 여성농민들이여! 우리는 계속해서 꿈꾸고 꿈꾸는 것들을 사랑하고 꿈꾸는 것들을 요구하자! 아직도 우린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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