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남사당③ 붉은 깃발 오르고, 저녁밥을 먹었다!

  • 입력 2020.10.09 21:59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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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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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의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보좌관 격인 곰뱅이쇠를 거느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간 지도 한참이 지났다. 동네 들머리에 널브러지다시피 모여 앉은 단원들의 낯빛에 피로와 배고픔과 세상살이의 고단함이 역력하다. 벌써 마을을 두 군데나 공치고 지나왔으니….

그 때 누군가가 “붉은 기다! 붉은 깃발이 올랐어!”를 외쳤고, 그 소리에 너나없이 날 밟힌 괭이자루처럼 발딱 일어나 마을 쪽으로 눈길을 향한다. 멀리서 곰뱅이쇠가 붉은 깃발을 힘차게 흔들어 보인다.

-허허허,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구먼. 자, 모두 일어나 들당굿을 한바탕 쳐보더라고!

농악대 대장인 상쇠가 꽹과리를 들고 일어서고, 이어서 신나는 풍물 굿판이 벌어진다.

“남사당의 공연을 하락했다는 표시로 곰뱅이쇠가 붉은 기를 흔들면, 단원들이 모두 일어나 들당굿을 치지요. 어느 동네나 초입에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당(堂)이 있거든요. 들당굿은 남사당패가 마을로 들어가겠다고 수호신에게 신고하는 의례예요. 공연을 다 마치고 마을을 떠날 땐 또 그 당 앞에 이르러서 신령에게 작별인사 삼아 날당굿을 치고….”

예전에 남사당패에서 농악대의 상쇠로 활동했던 꽹과리잡이 전덕현 씨의 얘기다.

굿판이 벌어질 부잣집 너른 마당에다 짐을 내려놓고 나면, 남사당 패거리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이다.

-동네 사람들! 오늘 저녁 우리말에 남사당패가 들어왔습니다! 이 사람들 저녁 식사를 좀 부탁하겄습니다! 주민 여러분! 우리말에 남사당패가 왔으니….

스피커 시설이 없던 시절, 목청 좋은 동네사람이 마을 한복판의 높은 곳에 올라가 이렇게 소리를 쳐서 일단 예고를 한다. 그러고 나면, 나이 어린 무동(舞童)들이 골목골목으로 나뉘어 호별방문을 한다.

-아주머니, 저희 남사당 사람들한테 저녁 한 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렴, 좋은 구경 하려면 우리도 저녁밥 한 그릇은 대접을 해야지.

-그런데…이 댁에는 밥을 먹으러 몇 사람이나 오면 되겠습니까?

-아이고, 어떡허나. 벌써 밥을 안쳐버려서 한 그릇 밖에는 여유가 없겠는데.

-괜찮습니다. 한 그릇만 대접을 해주셔도 고맙지요.

무동들은 밥 한 그릇을 주겠다는 집의 경우 사립이나 대문 앞 바닥에다 사금파리로 ‘한 일(一)’자 표시를 하고, 세 그릇 주겠다는 집에는 ‘석 삼(三)’자를 그려놓는다. 무동들의 그 표시는, 어느 집으로 몇 사람이 밥을 먹으러 갈 것인지를 안내해 주는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굿판이 벌어질 마당 한가운데에 모닥불이 지펴지고, 마당의 좌우 양쪽으로는 솜방망이에 붙은 기름불이 활활 타오른다. 그 사이 남사당패들은 빈 방에 들어가 공연 의상으로 갈아입는데, 그 자리에서 각자 저녁밥 얻어먹으러 갔던 일들을 쑥덕거린다.

-에이, 재수 더럽게 없었어. 잔뜩 기대하고 버들세 집에 들어갔다가 조꿀 맞췄지 뭐야.

-나만 재수 없는 게 아녔구먼. 나는 추리세 문패 단 집에 갔다가 흘림 맞췄어.

주고받는 말들이 그야말로 암호문자다. 전덕현 씨의 해설을 들어보자.

“버들세는 유 씨이고 추리세는 박 씨예요. ‘버들세 집 들어가서 조꿀 맞췄다’는 말은, 유 씨 성을 가진 집에 들어갔다가 밥이 모자라서 한 그릇을 둘이 나눠 먹었다는 얘기요. ‘추리세 집에 갔다가 흘림 맞췄다’는 말은 박 씨 성 가진 집에 들어갔다가 밥은 못 먹고 죽을 얻어먹었다는 얘기고…. 대개는 비슷하지만 남사당패들마다 주고받는 은어가 조금씩 차이가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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