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감염병의 공포와 기후위기가 동시에 식량안보를 위협하면서 올해 농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기감을 느낀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7월 발표한 한국형 뉴딜의 핵심 내용에서 식량 부문이 빠진 데 이어 내년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비중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농업 패싱’이 연이어 이어지자, 농민들은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농민대회를 열어 당·정·청을 향해 ‘식량주권 실현’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응하라 외쳤다.
통상적으로 농민대회는 농민들을 서울로 모아 개최하지만 이번 농민대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축소·분산돼 열렸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박흥식, 전농),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김옥임, 전여농), 가톨릭농민회,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전국쌀생산자협회 등 농민의길 소속 단체들은 지역 조직들로 하여금 8일 광역자치단체와 여당의 각 광역도당을 겨냥한 동시다발 집회를 열 수 있도록 독려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참가 인원이 제약돼 경기·강원·경북은 기자회견의 형식으로, 충남·경북·경남·전북·전남·제주는 차량행진으로 항의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8대 요구안을 준비한 농민들은 이를 각지의 더불어민주당 광역도당 사무실에 전달했다. 요구안에는 △식량자급을 실현하는 농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전면 개정 △농산물 수입에 대응하는 비관세 조치 도입 등 구체적 정책 마련 △농민도 소비자도 동의하는 농산물 가격을 보장할 주요 농산물 가격 보장제도 제정 △자연재해에도 농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농업재해보상법 제정 △식량자급의 물적 토대인 농지를 국가가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농지관리청 설립 △농업용수의 안정적·효율적 활용을 위한 독자적 물관리 체계 구축 △식량위기,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농업예산을 과감히 증액 △2020년 쌀 수확기 정부 구곡 방출 저지 △지난 3년 신청하지 않아 누락된 공익형직불금 지급대상을 구제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서짐미 전여농 충남도연합 준비위원회 회장은 “2020년 한 해 보여준 공포와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아직 농업의 중요성은 국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라며 “첫째도 둘째도 방역이 최우선인 지금 우리 농민들은 현재 농업정책의 방향이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하기 위해 대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어 “농림축산식품부가 식량위기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국내 사업자들 중 해외에 농장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반입 명령’을 내린 것이 전부”라며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농산물을 소비하는 국민 전체의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라고 호소했다.
이대종 전농 전북도연맹 의장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많은 제약이 있지만, 우리뿐만 아니라 조선 팔도에서 같은 시간에 집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 농민들이 살아있다는 것, 한목소리로 근본적인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라며 “비록 성에 차지 않고 손에 쥔 것 없이 돌아가는 것 같이 느껴질 수 있으나 우리가 얼마나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를 마음에 담았으면 한다”고 독려했다.
한편 같은 시각 서울에서는 35개 농민단체가 연합해 출범한 ‘코로나19 대응 농민공동행동’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동시다발 농민대회의 8대 요구안과 대동소이한 내용의 공동요구안을 장경호 청와대 농해수비서관실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농민공동행동은 지난 6일 이개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과 함께 같은 기조의 성명 또한 발표한 바 있다. 농민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는 정부의 농정이 식량자급을 통한 식량주권을 실현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본질적인 것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요구한다”라며 “오늘 우리들의 요구는 정부와 청와대 그리고 정치권에 분명히 전달할 것이다. 그리고 절박한 우리들의 요구를 얼마나 실현하는지 지켜보며 이후 투쟁의 강도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