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따라 생활건강] 의사의 얼굴은 왜 파래지는가?

  • 입력 2020.09.27 18:00
  • 기자명 나현균(한의사, 김제더불어사는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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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균(한의사, 김제더불어사는협동조합 이사)
나현균(한의사, 김제더불어사는협동조합 이사)

이탈리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토마토가 붉게 익어갈수록 의사들 얼굴은 파랗게 변해간다.”

토마토의 붉은 색을 내는 라이코펜이란 성분은 항산화작용이 뛰어나 우리 몸의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부터 토마토를 즐겨먹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잘 익은 토마토를 충분히 먹게 되면 확실히 질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의사들의 얼굴은 반대로 파래진다고 얘기했을까요?

의료의 목적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니만큼 질병이 적어지면 누구보다도 기뻐해야 할 의료인들이 도리어 얼굴이 파래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의료의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의사들의 파업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의사들의 주장은 그들의 입장에선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입장에선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의사들의 파업은 생존권의 문제라기보다는 의료권력을 지닌 자의 횡포로 보여지는 측면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대부분 의사들의 소득이 대한민국 소득 순위 상위 1% 내에 위치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납득하기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의사들은 의사가 되기 전 누구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게 돼 있습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한의사들 또한 누구나 허준 선서를 하게 돼 있습니다. “병든 이들을 구하는 데 게을리 하거나 약과 침을 빙자하여 돈이나 명예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의료인들(의사나 한의사)이 의료 현장에 투입되는 순간 ‘의료의 인류에 대한 신성한 봉사’라는 선서는 자본주의의 이익추구 수단 앞에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렇듯 의료가 사적 이익의 도구로 사용되는 순간, 의료는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빙자해 돈을 추구하는, 즉 인간을 파괴하는 괴물로 전락할 것입니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간 사적 영역에 방치돼왔던 의료 영역을 지금이라도 공적 영역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명의(名醫)는 치미병(治未病)이라’ 했습니다. 즉, 질병을 잘 고치는 것이 명의가 아니라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사전에 예방하는 의사가 최고의 의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 의료제도에 의하면 이런 뛰어난 의사가 소위 돈이 안 되는 의사가 돼, 도리어 병원에서 외면당하기 십상입니다.

아울러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파업기간에 전공의들에 의해 배포된 홍보물에서 나타난 그들의 경도된 엘리트의식이었습니다. 의료지식은 누가 뭐래도 질병을 겪으며 고통당해왔던 환자들의 희생과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해온 선각자들에 의해 축적된 인류공통의 소중한 지적 자산입니다. 이러한 지식을 국가사회의 배려 속에서 배우게 된 특혜에 대한 감사함은커녕, 오히려 이것을 무기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구화하려는 시도를 보고 국민들이 느끼는 슬픔은 큰 것이었습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일선에서 정말 피땀을 흘리며 수고하시는 의료인들이 많습니다. 특히 질병관리청의 의료인들은 의료의 공적 임무를 다하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수고에 수고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료인들의 헌신이야말로 진정한 의료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헌신적인 분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적 이익에 민감한 현 의료제도를 과감히 개혁해 의료제도를 의료 본연의 임무에 적합한 공적 영역으로 하루 바삐 복귀시켜야 할 것입니다.

환자만 많이 보면 제일로 치는 현 의료시스템을, 국민이 건강해져 환자가 줄어들고 그럴수록 의사들의 얼굴도 더욱 밝아지는 공공의료시스템으로 바꿔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주체는 의사들이 아니라 당연히 국민들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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