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존

  • 입력 2020.09.27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1980~90년대 세계 대중문화에서 주로 거론된 주제 중 하나는 ‘로봇과 인간의 공존은 가능한가’였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엄지척’으로 유명한 <터미네이터> 시리즈, ‘움~치키’ 효과음이 인상적인 <로보캅> 시리즈 등의 작품은, 결코 공존할 수 없을 듯하면서도 공존을 이루는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 저 영화들을 보던 당시엔 공존 같은 건 생각도 못하고 ‘이러다가 T-1,000(영화 <터미네이터 2>의 악역 로봇) 같은 못된 로봇 때문에 지구가 멸망하는 거 아니냐’는 공포감에 시달렸다. 지금 와서야 우스운 생각이지만, 그땐 정말 진지했다. 그나마 현재로선 로봇 때문에 지구가 멸망할 성 싶진 않다.

그러나 2020년 현재 우리는 T-1,000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협 때문에 공포에 떤다. 바로 기후위기다. 북극의 ‘영원히 얼어붙은 땅’이 녹아내리고, 곳곳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고, 태풍과 홍수, 가뭄 등 온갖 재앙이 닥치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채식 확대’가 거론된다. 시민들은 채식 확대를 촉구하며 육식, 나아가 축산업이 기후위기의 주범 중 하나라고 언급한다.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채식선택권을 보장하고, 국가 차원에서 채식 확대를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시민들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그러면서도 함께 드는 고민이 있다. ‘육식을 줄이고 축산업을 없앤다면, 지금 이 땅에서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농민들은 어떡하지?’

축산업이 기후위기에 영향을 끼치는 게 사실이고, 중장기적으로 농업, 축산업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만약 그렇다면 축산업을 축소시킬 시 지금 현재 축산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의 삶은 어찌할 것인가’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 현재 정부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농업 정책은 고민도 안 하다시피 하고, 그 분야에 농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도 안 하는 상황에서, 축산업 종사 농민들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까.

너무나도 뻔한 소리지만, 기후위기 문제를 고민하는 도시민과 농민(대형 축산업 종사 농민이든, 동물복지 축산 농민이든, 일반농민이든, 친환경농민이든 모두) 간의 만남이 절실하다. 서로 갖고 있는 오해를 풀고, 각자가 가진 고민과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기왕이면 누구도 고통스러워지지 않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도시민·농민의 소통 과정에서 나온 결과를 정부는 무엇이 됐든 정책화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상상 속의 지구멸망 위기 속에서 ‘로봇과 인간의 공존은 가능한가’를 물었던 우리는, 현실로 닥친 지구멸망 위기 속에서 한 번 쯤은 ‘채식과 축산업의 공존은 가능한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