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불합리에 목소리 높여야

  • 입력 2020.09.27 18:00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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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교수
우희종 서울대 교수

올해는 유독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코로나19와 여러 번의 태풍을 겪으면서도 논밭에는 작물이 수확을 기다리며 익어간다. 세상사는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 또 선의를 지니고 이뤄낸 변화 역시 때로는 역작용을 나타내어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 이는 사회 어느 분야를 불문하고 다르지 않다.

사회변화에 따른 자체 변화가 요구되는 농업·농촌은 여러 통계 수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곳이다. 이는 목축이나 수렵과 달리 정착 형태로 진행되는 농업·농촌의 특성은 물론 천년을 넘는 긴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로 인해 누적된 삶의 형태는 때로는 완고한 문화적 무게를 구성원들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농촌은 전형적인 상부상조의 문화를 지닌 곳이다. 과거 보릿고개의 힘듦을 넘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문화였을지는 몰라도 땅과 힘든 노동력에 의존해 얻어지는 산물에 의존해야 하는 특성에 근거할 때 그런 전통은 자연스럽다고 말하기 이전에 필연적이었다.

끈끈한 지역 연대는 단지 농업·농촌 문화를 넘어 지역공동체라는 하나의 속성이 돼 미덕이었지만, 때로는 농촌 배타성으로 작용해 농촌 변화에 걸림돌이 되는 것도 현실이다. 사회 변화에 따른 귀농 열풍과 이에 대한 실패 원인 중의 하나가 지역 배타성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열린 농촌으로의 전환과 이를 통한 농업·농촌 개선에 장애로 작동한다.

필자가 속한 대학을 봐도 해방 이후 여러 경험을 통해 형성된 문화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때로는 사회 변화에 따라 발맞추지 못하고 결국은 외부로부터의 변화 압력에 이끌려가기도 한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권력에 쓴 소리를 하던 뜻 있는 대학교수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기획수사의 희생물이 돼 대학으로부터 쫓겨났고 제대로 하고픈 말을 하지 못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군사정권의 권력남용에 빌붙은 사학재단은 재단 이해관계와 유착돼 독재 권력과 이해를 같이하면서 교권 침해가 일반화됐고,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대학교수들의 신분보장 관련 제도는 꾸준히 자리 잡아 때로는 철밥통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허나 이제는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대학교수가 버티고 대학에 남아있게 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돌이켜 보면 어느 사회나 그렇듯이 우리사회와 문화 역시 나름의 현장 역사성을 지니고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의 문재인정부 역시 광화문 촛불 혁명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는 오랜 기간 재벌과 기업을 위주로 움직여온 정치집단에 대한 국민 개혁 의지였다.

부정부패의 박근혜정권을 목도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여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켰기에 남북 평화 공존과 더불어 검찰이나 언론, 사학 개혁 등 국민들의 사회개혁 의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표명과 함께 사회전반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됐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사회변화가 늦고, 군사독재 사회는 이제 민주화 시대가 됐음에도 여전히 사학재단 비리는 말끔히 치워지지 않고 있다.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현실에서 국가가 농촌 지원의 여러 정책을 마련하고 막대한 국가지원금을 쏟아 부어도 농촌이 그리 잘 살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사회 제반의 개선을 위한 의지와 노력은 눈에 보이고 이를 위해 지도층이나 상부구조의 변화는 보이는데 실제 농업·농촌 현장의 개선이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농업·농촌의 변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현장의 깨어있는 농민들이 중요하다. 지난 14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농민수당 주민발의안 처리 촉구 전북농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모든 농민에게 농민수당 지급, 주민발의안 조속한 처리’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농촌의 변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현장의 깨어있는 농민들이 중요하다. 지난 14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농민수당 주민발의안 처리 촉구 전북농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모든 농민에게 농민수당 지급, 주민발의안 조속한 처리’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사회 개혁, ‘늘공’이 바뀌어야

촛불 혁명으로 정부가 바뀌어서 국가를 책임지는 대통령과 장·차관이 새롭게 자리 잡았어도 실제 개혁의지를 이어받아 현장으로 이어줄 중간 다리 역할을 해야 할 중간 공무원층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자세가 변하지 않는 한, 국민들이 느끼는 현장의 실질적인 사회 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늘공’이란 말이 있듯이 늘 공무원인 이들은 선출돼 일정 임기가 있는 위쪽 상관들보다는 자신들이 해 오던 모습이나 문화에 길들여져 있어서 이를 바꾸려는 개선이나 개혁에 동참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 각 부처의 공무원 조직이 앞선 정부와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대학이나 이를 담당하는 교육부 상황도 다르지 않다. 퇴직한 교육부 공무원들은 친하게 관계를 맺어온 사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길 뿐이다.

농촌 현장에 있어서도 농림축산식품부는 물론, 외형적으로 농민 대변 조직인 농협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아쉽게도 사회 전반의 흐름에 있어서 변해야 할 직접적인 중간조직이나 계층은 여전히 숨죽이며 변화의 물결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사회변화의 열망을 지니고 있되,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현장에서 힘들어 하는 이들의 모습은 변하지 않고 있다.

농업·농촌은 시대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와 인구 격감에 시달리고 있다. 농촌의 특징인 지역공동체성의 상실, 파괴가 심각하다. 초고령화는 물론 외국인노동자에 의해 겨우 유지되는 지경이다. 이에 따라 농촌도 각자도생의 공간이자 그나마 힘을 모아야 할 농협은 농협 나름의 생존 전략으로서 농민과 함께 하기보다는 지역농협에 따라서는 오히려 농민을 이용해 자기 배를 불리는 형태로 전락해 있다.

하지만 농민 측에서 농촌 현장을 대표해야 할 기관은 농협이다. 그렇다고 농협이 농민을 대변하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공감할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농협이 농민을 대변하기보다는 농협은 또 다른 지주회사로서 농민을 이용해 자신을 배불리는 조직으로 작동한다.

국가의 막대한 농촌 지원 사업도 농협을 통해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만든 여러 시설 역시 농협 이득을 높이는 데에 사용되고 시설지원에 의해 발생한 이득을 농민에게 돌려주기보다는 자신들의 직원 돈 잔치에 활용하는 것에 뜻 있는 농민들의 불만은 높아만 간다.

또한 농협을 통해 추진되는 여러 지역사업은 농협과 유착된 대학연구자나 연관기업에 의해 제안되고, 그렇게 공모된 사업과제에 대한 심사 평가 역시 해당 연구자 집단이 하게 된다. 현장과는 거리가 있어도 그런 과정을 거쳐 선정된 국가 지원 사업은 결국 그들 배를 채우고 잔뜩 부풀린 결과 보고서로만 남는 경우도 많다. 국가 시설 지원 사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의지는 현장 목소리와 만나야 한다. 특히 중간에서 복지부동으로 책임지지 않고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는 층이 좋아하는 것이 통계 수치다. 통계 수치를 들이대면 많은 이들이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나 정부 부처 및 기업들이 주로 통계 숫자를 강조하고 이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깨어있는 농민들이 중요

농업·농촌은 정부 의지와 현장과의 거리가 큰 분야에 속하기에 통계 수치와 현장 간의 거리감이 유독 심하다. 이를 개선해야 할 농협은 더 이상 농민을 이용하는 조직이 아니라, 농민과 함께 하는 조직으로 전환돼야 하고 정부는 이를 위해 장기 계획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농업·농촌의 초고령화 상황에서 더욱 필요성이 요구되는 노인 지원 사업과 시대 변화에 따른 건강한 먹거리 확보 및 농촌 뉴딜 사업이 행정 탁상이거나 사업자 위주가 아니라 현장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의 깨어 있는 농민들이 중요한데, 고령화와 각자 도생 문화가 자리 잡고 있으니 더욱 어렵다. 국민이 기대하는 사회변화처럼 농촌의 변화 역시 생각보다 쉽지 않고, 오히려 변화를 원치 않는 이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사회는 더욱 갈등 상황이 돼 있고, 분열이 우려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민주사회라면서 왜 이렇게 더욱 시끄럽게 됐느냐는 불만마저 드러낸다. 그러나 민주사회일 때 사회 갈등이 적어지고 조용할 것이라는 것은 관념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민주화되면 될수록 다양한 입장의 목소리가 허용되고 존중되기에 갈등과 소란스러움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며, 일의 진행은 매우 더딜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기대하는 변화를 위해서는 갈등과 소란스러움, 그리고 이에 소요되는 시간은 충분히 감내해야만 된다.

농업·농촌의 변화를 생각한다면 중간의 불합리한 구태의 구조와 문화 개선을 위해 이런 마음으로 국민들과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공동체 문화가 그런 부정과 비리를 덮는다 하더라도 현장의 불합리한 것에 목소리를 높이자. 그것이 우리 농촌 현장을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이다.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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