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라면 끓이다 화상 입은 형제 뉴스를 보다가

  • 입력 2020.09.27 18:00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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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30년 전의 나의 이야기

1톤 트럭 좌석 뒤편은 언제나 딸아이의 놀이터가 됐다. 잠이 오면 그냥 드러누워 자다 문을 스스로 열지 못하니 고래고래 엄마를 부르다 아빠를 부르다 그렇게 잠이 들곤 했다. 하우스 한편엔 커다란 고무통을 두고 그 속에 아이를 두고 일을 했다. 고무통이 크고 무거워 아이는 끝내 그 안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놀다가 울다가 그렇게 잠이 들곤 했다.

딱히 봐줄 이가 없어, 기저귀를 떼지 못한 아이들의 어린이집 비용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할 일이었을까? 직장생활이나 품팔이를 했다면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50년 전의 어머니 이야기

방안에 먹을 것을 두고 문을 걸어 잠그고 일을 하고 어둑해질 무렵 들어오면 아이들은 울다가 대소변을 쏟아내다 그렇게 잠이 들어 있었다는 어머님들의 말씀을 익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다.

2020년 여름의 이야기

여성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아이들은 비대면 수업으로 집에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 일을 쉬며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처지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30대에 두 아이를 가진 여성에게 제공되는 일자리의 대부분이 불안정하고 저임금일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언론은 하나같이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이 났다며 하루 종일 중계방송 하듯 외쳐대고 있다.

걸어 다닐 무렵부터 가스레인지 불 켜는 것을 가르치고 라면 끓이는 법을 가르쳤던 나에게 저런 일이 일어났더라면 아마 똑같은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방치하고 방임하는,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가 있다니 하며 조리돌림 당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 돌리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아이 낳으려 하지 않는 여성에게 누가 감히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개인마다 제각각 처한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재난 시기에 돌봄노동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한 국가에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 못하다면 인구절벽과 출산율 저하를 운운하는 목소리는 한낱 개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구청이나 학교에서도 이미 형제들의 사연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하나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손 놓고 바라보는 2020년 현 사회의 비극적인 모습이 너무나도 큰 절망으로 다가선다.

지금도 어딘가 존재하는 돌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지 않으면 이번 일은 언제 어디서든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수해를 당하며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사각지대, 아무리 이야기 해봐도 어쩔 수 없다며 덮어두기에 급급한 현실,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언제까지 민간에 맡길 것인가? 당장 국가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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