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남사당② 꼭두쇠, 곰뱅이쇠, 뜬쇠…

  • 입력 2020.09.27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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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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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패의 단원은 무동춤을 추는 아이들까지를 합해서 많을 때는 50여 명에 이르렀다. 얻어먹는 처지이다 보니 하루 세 끼를 찾아먹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으나, 그 단원들을 적어도 굶겨 죽이지 않을 책임을 진 사람이 바로 남사당패의 우두머리인 꼭두쇠였다.

남사당의 식구들이 마을 어귀에 이르렀다. 그 전 마을에서 한 번 허탕을 친 뒤에 고개 넘어 찾아온 동네인지라, 이번엔 어떻게든 일이 잘 되어서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아이고 배고파 죽겠네. 이 동네 또 허탕 치는 것 아녀?

-재수 없는 소리 말더라고. 아이고, 다리야.

지친 단원들이 제가끔 지니고 있던 악기 등속을 바닥에 내려놓고 느티나무 그늘 아래 퍼질러 앉는다. 여자 단원이 한쪽으로 돌아앉아 울며 보채는 아이에게 젖을 물려보지만, 어미 뱃속에 들어간 게 없으니 젖꼭지만 아프다.

-자, 나는 마을에 들어가서 이장하고 협상을 해볼 테니까, 앉아 있지만 말고 뜬쇠들은 단원들 연습 좀 시켜!

단원들을 마을 어귀에 기다리게 해놓고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동네로 들어간다. 꼭두쇠의 보좌관 격인 곰뱅이쇠가 깃발 두 개를 말아 쥐고 그를 따른다. 그 동네에서 남사당의 굿판을 허용할 것인지, 마을 책임자로부터 허락을 받아내기 위한 행차다.

-자, 이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안 하고는 몸살 나서 못 살겠다, 할 정도로 신나게 한바탕 놀아보더라고. 거기 가열들, 전부 이쪽으로 와서 대형 맞춰 서 봐! 장구잽이, 소구잽이 뭣들 하고 있어. 살판, 어름, 삐리들도 빨리빨리 움직여!

이윽고 북장구 소리가 아우러지고 동구 밖에서 한바탕 연습굿판이 벌어진다.

우두머리인 꼭두쇠 바로 아래 서열로서 각 연희 분야의 선임자인 뜬쇠가 있다. 남사당패의 공연은 풍물 외에도 대접돌리기인 버나, 땅재주를 넘는 살판, 줄타기의 다른 이름인 어름, 탈춤놀이를 뜻하는 덧뵈기, 그리고 꼭두각시놀음인 덜미 등 대개 여섯 가지 놀이로 이뤄지는데, 이 여섯 분야의 선임자들이 모두 뜬쇠가 된다. 그리고 그 뜬쇠의 지시를 받는, 보통 정도의 기예를 갖춘 사람들을 가열이라 일컫는다. 가열 밑에는 이제 막 기능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자가 있기 마련인데 이들의 남사당 식 이름은 삐리다.

-에이, 연습이고 뭣이고 그만들 둬! 남색 기 올랐어.

꼭두쇠를 따라 마을로 들어갔던 곰뱅이쇠가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말아 쥐고 있던 두 개의 깃발 중에서 남색 기를 펴서 흔든다. 바람잡이 굿판이 뚝 그치고 “에이 또 틀렸어” “아이고, 뱃가죽이 등허리에 붙어버렸는데” “세상인심 한 번 야박하네” “또 어느 마을로 가봐야 하나” 따위, 저마다 한 마디씩 푸념을 늘어놓는다.

마을 이장 등 유지로부터 그날 밤 남사당을 받아들이겠다는 허락을 받으면 붉은 기가 올라가고,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면 곰뱅이쇠가 남색 깃발을 들어올린다. 마을의 권력자가 남사당 굿판을 받아들이기로 해서 붉은색 깃발이 나부낄 때, 단원들은 ‘곰뱅이가 트였다’라고 얘기한다. 열군데 마을을 돌았을 때 그 중 곰뱅이가 트이는 경우는 한두 마을에 불과하다.

“남색 깃발 오른 거 보면 동구 밖에서 기다리던 단원들은 맥이 빠지지요. 하지만 협상에 실패하고 돌아 나오는 꼭두쇠의 마음은 오죽하겠어요. 단원들을 또 굶기게 생겼으니.”

왕년에 남사당패에서 풍물단원을 이끌었던 꽹과리잡이 윤덕현 씨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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