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품격③] 경북 청송 현서농협

사과재배 혁신! 고령화 넘는다
생산에서 판매까지 책임지는 농협 … “농민들 곁으로 한걸음 더”

  • 입력 2020.09.20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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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역농협의 핵심은 경제사업에 있다. 농민조합원이 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판매할 수 있도록 돕고, 이를 통해 농민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 지역농협의 목적이어서다. 이에 <한국농정>은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개혁적 성향의 농협 조합장 모임 정명회와 공동으로 매월 1회 지역농협 경제사업의 모범사례를 찾아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8일 김해환 현서농협 조합장(오른쪽 세 번째)과 직원들이 농산물유통센터(APC) 앞에서 올해 출하된 부사와 황금사과 등의 상품을 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지난 8일 김해환 현서농협 조합장(오른쪽 세 번째)과 직원들이 농산물유통센터(APC) 앞에서 올해 출하된 부사와 황금사과 등의 상품을 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북 청송군 현서면은 사과의 고장이다. 해발 420m, 한랭 기후에 햇볕도 풍부해 사과재배의 적지로 통한다. 현서면 전체 1,431가구 중 절반 이상인 735가구가 사과농사를 짓고 있을 정도다. 해마다 수확철이면 탐스럽게 익은 사과가 현서면을 찾는 이들을 반기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올해는 태풍 피해로 과수원 사과나무 사이마다 낙과가 즐비했고, 농민들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지난 8일 만난 김해환 현서농협 조합장은 “태풍 피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고령화”라고 강조했다. 현서면이 전체 인구 2,608명 중 65세 이상이 1,003명(38.5%)에 달할 정도로 초고령화 지역인 까닭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사과 생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지역사회 유지는 물론 농협의 존립 또한 장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에 지난 2015년 당선된 김 조합장은 ‘생산에서 판매까지 책임지는 농협’을 구호로 사과재배 방식의 혁신에 공을 들였다. 핵심은 저비용 고효율 재배방식이다. 여기에 더해 고령 농민을 위해 노동강도와 노동일수를 줄이는 방법도 추진했다.

김해환 현서농협 조합장. 한승호 기자
김해환 현서농협 조합장. 한승호 기자

우선 중점을 둔 건 ‘고밀식’이라는 사과재배 방식의 변화다. 기존 방식은 사과나무를 키우고 사과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생산까지 최소 3~4년은 걸렸다. 열간, 주간 거리도 넓고 가지를 퍼트리기 위해 추도 달아야 했다. 이에 반해 고밀식은 열간, 주간 거리를 확 좁히고, 가지도 늘어지지 않는다. 재식 이듬해부터 수확이 가능하고 생산량도 더 많다. 서서 딸 수 있을 정도로 노동력이 적게 들고, 기존 방식보다 농약이나 비료도 1/3밖에 들지 않는 방식이다.

품종 변환도 추진했다. 청송 사과의 대표적 품종이 부사(후지)였는데 2017년부터 황금사과를 도입했다. 황금사과의 경우 잘 익으면 노란색을 띠어 부사처럼 착색을 위한 잎 따기, 알 돌리기, 반사필름 깔기 등의 과정이 생략돼 노동력과 생산비가 절감된다. 실제로 18kg 1상자 생산비용이 부사보다 4,000~5,000원은 적게 들어간다. 김 조합장은 “황금사과 품종 도입은 생산방식의 변화 중 하나지만, 판매시장도 주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재배방식과 품종 변환을 위한 관건은 영농기술교육 강화다. 이를 위해 2017년엔 영농지도직 직원을 채용했고, 경북대 사과연구소와 영농기술관련 거버넌스도 구축했다.

지난해부터 영농기계화대행사업도 시작했다. 고령농의 일손을 대신하고, 고가의 농기계 부담을 줄여 귀농인 등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사업이다. 올해의 경우 10농가의 농사를 대행하고 있다.

사과재배 방식 혁신을 위해선 무엇보다 생산자 조직화가 필수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 농가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서다. 핵심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선도농가의 육성이다.

현서농협 주요 선도농가인 최상길씨의 경우 3년 전부터 사과의 왕이라 불리는 품종인 감홍을 재배하고 있다. 최씨는 “전화기에서 휴대폰이 바뀔 때 어렵다고 했지만, 이젠 더 쉽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밀식 재배도 기존 방식보다 농사짓기가 수월하다. 묘목값이 기존보다 다소 높아 초기비용이 조금 더 들지만 수확이 빨라 재식 이듬해면 이를 충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농가소득도 기존 부사보다 3배 이상 높다. 지난해 기준 18kg 부사 1상자 평균 가격이 2만5,000원 선이었다면 감홍의 경우 8만5,000원 선이었다.

실제로 최씨처럼 선도농가에서 현서농협의 권장 방식에 따라 농사를 짓자 사과 품질 향상과 더불어 판로 확보 등 농가소득에도 보탬이 된다는 입소문이 나니 20명을 모집하는 부사공선회에 70~80명이 신청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황금사과 등 조직된 농가 생산물은 현서농협이 전량 확보에 나서 농가 집중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김 조합장 당선 이전 9명에 불과했던 부사공선회는 98명에 달하고, 황금사과 공동출하회도 144명이 조직됐다. 농가마다 생산력에 차이가 있었지만 농가 조직화를 통해 상향평준화되고 있다는 게 김 조합장의 설명이다.

현서농협은 현서면 전체 사과 생산량 9,000~1만톤 중 13%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올해는 15%, 장기적으로는 20%까지 소화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김종철 현서농협 농산물유통센터(APC) 센터장은 “정부 지원으로 자동선별기가 구비된 현서농협 산지유통센터 제2공장을 지었지만 저온저장창고가 아직 부족해 앞으로 처리시설을 늘리는 게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래야 성장에 불이 붙은 판매사업도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령화로 인해 어려워진 농촌. 지역사회가 살아날 수 있도록 농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야 한다는 게 김 조합장의 철학이다. 그가 현서농협 하나로마트나 유류취급소를 농협주유소로 확장 이전하고, 지역 복지회관 목욕탕을 위탁운영하며 수익의 50%를 지역사회에 환원한 것도 그래서다. 그 중심엔 사과재배 방식 혁신이 있다. 고령화 위기를 넘기 위한 현서농협의 도전이 지역사회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서농협 주요 선도농가인 최상길씨의 밭에 사과의 왕이라는 감홍이 고밀식 방식으로 재배되고 있다.
현서농협 주요 선도농가인 최상길씨의 밭에 사과의 왕이라는 감홍이 고밀식 방식으로 재배되고 있다.
현서농협 농산물유통센터(APC) 제2공장을 신축하며 도입한 프리트레이 자동선별기에서 직원들이 햇사과를 선별 중이다.
현서농협 농산물유통센터(APC) 제2공장을 신축하며 도입한 프리트레이 자동선별기에서 직원들이 햇사과를 선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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