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청양 빵집에 들렀다

  • 입력 2020.09.20 18:00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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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2_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청양 출장길에 읍내 한 빵집에 들렀다. 이 빵집은 구기자 등 지역산 천연재료로 빵을 구워 지역 내에서는 나름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읍내는 한산했고 빵집에 손님도 한두 명 밖에 없었다. 얼마 전 청양군 김치공장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지역 자체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청정지역이었던 청양군도 패닉상태에 빠졌고 시골의 골목 상권도 더욱 어려움에 내몰렸다. 출장길에 일부러 그 빵집을 찾은 이유다.

청양군 인구는 2017년 말 기준 3만2,837명을 정점으로 계속 줄어 8월 현재 3만863명 수준이다. 청양군에서는 이러다가 인구 3만명까지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인구 3만명, 그 이하로 떨어지면 주민들의 불안감도 커질 것이다. 청양군은 민선 7기에 들어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성과 또한 적지 않았다. 지역활성화를 위해 충남에서는 처음으로 푸드플랜(먹거리계획)사업을 추진했고 신활력플러스사업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충남사회적경제혁신타운 설립이 확정돼 몇 년 후면 번듯한 ‘혁신센터’가 들어설 것이다. 이러한 많은 사업들이 인구 감소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현재로써는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다.

청양군에는 산부인과 전문의원이 없다. 보건소에서 산부인과 업무를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으나 전문의가 없다보니 출산을 위해서는 인근 도시 지역으로 나가야 한다. 청양군에서는 고액 연봉을 주고서라도 산부인과 전문의를 유치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대신 인근 대학 의료원과 협약을 통해 산부인과 업무를 협력하는 걸로 했다. 씁쓸한 장면이다. 인구가 감소하니 의사가 오지 않고 의사가 오지 않으니 인구가 늘지 않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지방공공의대를 설립하려는 이유다. 그런데 의사단체가 악착같이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지방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지방은 죽어가도 되는 건가. 젊은 시절 한 번의 시험으로 얻은 기득권을 평생 구가하려는 그들의 작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는 비단 의사만이 아니고 오늘날 우리사회의 소위 전문직이라는 사람들 대부분의 심리상태일 것이다. 더욱이 서울 중심 기득권의 강고한 세력화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유지되고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는 공공의 영역에서 매듭을 이어주고 공정한 발판을 마련해 줘야 하나 우리의 공권력은 맹수에 찢겨진 어린 짐승마냥 힘을 못 쓴 지 오래됐다. 이번 의사 파업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 번 사적영역으로 넘어간 권력은 이제 쉽게 공적영역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됐다. 결국 국민이 인질이 되고 희생될 수밖에 없다. 유럽 대부분 나라들의 의료는 공적영역으로 편입해 거의 무상진료거나 절반 이상을 공적영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공적 의료수준은 현재 시설로나 병상수로나 10% 미만으로 OECD 국가의 최하위다. 이것을 개선하려고 하니 오히려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이념공세를 펼치고 있다. 마치 해방 이후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려는 세력을 공산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로 몰아 말살한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코로나19 이후 세상에는 지금과 같은 인구가 유지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구가 좀 줄어들더라도 지금처럼 서울 등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되고 농촌에는 사람이 비어가는 세상을 반대한다. 국토 어디에 살든 사람이 사랍답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그들의 삶을 보장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현실은 서울중심의 기득권은 더욱 강화되고 농촌은 버려진 자식처럼 천대받고 있다. 인간의 무한정한 탐욕과 이기심이 결국 자신을 옥죄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산업화 이후 지구의 평균 온도가 1도 올라갔는데 문제는 앞으로 온도 상승이 더 가팔라질 것이고 이러한 속도로 온도가 올라가면 인류의 파멸이 올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사실 크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내 몸의 온도가 평균 2도 이상 올라간다면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자 섬뜩해졌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본주의적 욕망을 억제하는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욕망의 극대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굴리는 체계를 멈추고 이제 자연과 함께 공생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생태사회주의’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 “내 목소리부터 낮춰야 새들의 노래도, 벌레들의 소리도 들린다. 그래야만 풀들의 웃음과 울음도 들리고, 세상이 진실로 풍요로워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는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라고 녹색평론 편집인 김종철 선생님은 생전에 말씀하셨다. 경쟁력 농업을 버려야 한다. 농정예산의 절반 이상은 농민과 농촌주민들에게 직접 지급해야 농업과 농촌이 유지된다. 끊임없이 농가와 농가, 마을과 마을, 지역과 지역 간을 경쟁시키고 그 과실은 저 도시 사람들과 ‘기관 사람들’이 따먹는 지금의 농정체계를 바꿔야 한다. 정부의 그린뉴딜이 ‘구린뉴딜’이 되지 않도록 생태계가 보존되고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좀 더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사회생태농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청양의 맛 좋은 빵집도 유지되고 지역사회도 유지된다. 자본주의냐, 삶이냐? ‘22세기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질문에 농업계도 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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