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민들의 수입 저지 투쟁은 물론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한 싸움이지만, 동시에 언제나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싸움이기도 했다. 식량주권의 상실은 먹거리를 안전하게 생산하고 안전하게 유통할 수 있는 권리와 힘을 박탈당하는 일이다.
농민들의 한-칠레 FTA 저지투쟁이 본격화되기에 앞서, 2001년부터 본지 지면엔 수입 농식품의 안전성에 관한 기사가 빈번하게 게재됐다. 수입으로 인한 먹거리안전 침해에 벌써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당시 농업계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급박한 문제는 농약이었던 것 같다. 2001년 1월 4일 신년호엔 수입농산물 안전성에 관한 특집기사가 실렸는데, 우리나라에선 사용하지 않는 맹독성 농약을 수출국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심지어 독성이 강해 자국에선 허용하지 않는 농약을 수출 농산물엔 허용하는 나라도 있었다. 우리에겐 이를 검사·차단할 수 있는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준용해야 할 국제기준 역시 ‘몬산토’의 손 안에서 결정돼 신뢰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수입 농산물을 국민들에게 ‘원활하게’ 공급할 유통경로만큼은 이미 차고 넘쳤다. 같은 해의 기사들을 보면 공영도매시장의 도매법인들은 수입농산물 취급을 늘리는 데 여념이 없었으며, 중도매인들은 여론의 질타로 상장이 불발된 수입양파를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적극 유통시켰다. 원산지를 둔갑시켜 아예 소비자의 눈을 가려버리는 일도 물론 성행했다.
덧붙여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건 GMO 논란이다. 본지 2001년 1월 11일자 신문은 두 면을 통으로 할애해 GMO 안전성 문제를 집중분석했다. GMO 작물에 얽힌 다국적기업들의 이권 분석과 인체 유해성, 국내 유통 문제 등을 집대성한 기획으로, 2000년대 초반 GMO 논란 본격화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해 3월 GMO 표시제 시행과 맞물려 적잖은 관련기사들이 등장했으며 GMO 옥수수·콩 식용 유통 사건을 심각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2003년, 농민들의 처절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칠레 FTA가 체결됐고 이후 우리 정부는 거리낌 없이 농산물 빗장을 열어젖힌다. 2018년 한 해 수입신고된 농식품은 1,855만톤. 감모율·폐기율 등 변수야 있지만, 단순계산으로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350kg 이상의 수입 먹거리를 소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20년 전 우리가 제기했던 우려는 여과 없이 현실이 됐다. 물론 맹독성 농약 문제는 현대화와 PLS 제도 시행 등에 따라 과거보단 상당부분 완화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유통과정에서 사용되는 방부제나, 여전히 검역과정에서 사용되는 맹독성 농약(훈증제)을 생각해보면 그 안전성은 장담할 수 없는 면이 있다. 걸핏하면 뉴스에 등장하는 중국산 식품의 위생 문제나 일본산 식품의 방사능 문제 등도 심각한 위험요소다.
국민 건강과 농민 생존이 공히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유통인들의 행태 또한 변함이 없다. 불과 지난 겨울만 해도 중도매인들의 수입채소 불법유통이 이슈화됐고 도매법인들은 수입을 취급하지 말라는 농민들의 호소에 끝내 고개를 돌렸다. 국산 가격이 조금만 오른다 싶으면 횡행하는 원산지 둔갑 또한 결코 근절되지 않는 고질적 병폐다.
무엇보다 지금 시대의 최대 고민거리는 GMO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GMO 수입 문턱을 낮춘 이래 우리나라는 매년 200만톤 이상(사료용 포함 1,000만톤 이상)의 GMO 농산물을 수입하는 세계 1위 수입국이 됐다.
GMO 표시제가 시행 중이라지만 맹점이 여실하고 특히 식용유·간장·당류 등 액체제품엔 GMO 원료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제조회사 외엔 아무도 모르는 실정이다. GMO 완전표시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문재인정부는 사실상 ‘기업 편’을 선언했다. 20년 전엔 GMO 식품의 식용 유통에 ‘충격’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이제는 그 충격이 일상으로 변했다.
본지는 창간 초창기부터 수입 농산물의 위험성을 소리높여 경고했다. 그러나 오늘날 어느 것 하나 온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수입 농산물이 국민들의 밥상을 점령해버렸다. 수입의 1차적 피해자는 농민이라지만 결국 피해의 범위가 전 국민에게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 먹거리다. 20년의 시간. 끝내 지켜주지 못한 우리 아들 딸들의 밥상을 뒤로하고, 이제 우리 손자 손녀들의 밥상을 바라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