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넷째 출산기

  • 입력 2020.09.13 18:00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온 나라가 긴장과 걱정으로 얼어붙어 있을 즈음, 의사들의 집단 휴진이 언론에 도배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 놓아버림에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시골 아줌마인 난 처음에는 무슨 이유가 있으려나 싶어,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문제점이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했다. 그러나 환자들을 두고 휴진을 해야 하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함에 의구심을 느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산골에 자란 탓에 병원 신세를 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어느새 병원은 생활의 일부분이 됐다. 첫째 아이 출산 때는 규모는 작지만 지역의 병원 산부인과를 찾아 출산을 했는데 자연분만에 실패해 제왕절개를 해야 했다.

시골병원이라 신생아실도 없었기에 그냥 선택의 여지도 없이 모자 동실을 썼고 복부고통과 신생아를 돌보는 상황을 직면해야 했다. 모르니까 용감할 때였고,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힘들구나 했다.

둘째와 셋째 아이 때는 편도 2시간 거리에 있는 대도시 여성전문병원을 다녔다. 첫째 아이 병원보다 산모, 신생아를 돌보는 시스템이 잘 돼 있어 회복과 신생아 보살핌이 많이 편했다. 그러나 한 번 갈 때마다 교통비에 하루 종일 걸리는 시간도, 비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문제는 늦둥이 넷째였다. 학교를 다니는 큰아이들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난감한 상황이 됐다. 다행히 거창적십자병원이 몇 년 전부터 산부인과 거점병원으로 지정받아 작지만 시설과 의료진이 잘 갖춰져 있었다. 무엇보다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데 가까운 곳이 최적지였다. 덕분에 넷째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노산임에도 잘 회복하고 퇴원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막내가 저녁에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려 고통스러워했고 119에 전화를 해 상황설명을 하니, 대구나 진주를 가야 된다는 것이다. “거창에서 어떻게 안 될까요?” 애타게 물어보니, 일단 거창에서 유일하게 응급실이 있는 병원으로 가보라고 한다.

열악해 보이는 소규모 응급실에서 젊은 의사선생님은 핀셋처럼 생긴 집게를 들더니 우리를 보며 “생선가시에 걸리면 의사라도 달리 방법이 없어요” 하며 여러 번 시도 끝에 목구멍에 걸린 가시를 빼냈다. 그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아이는 최소한 1시간은 더 걸리는 병원까지 가야 했을 테고 아이는 힘들고 긴 고통을 경험해야 했을 것이다.

의사들이 뿔이 난 것이 공공의료라는 체계가 못마땅해서인지, 대우가 좋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농민도 의사도 우리사회의 구성원이고 우리사회의 지속가능함과 공동체의 안위, 행복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농촌에서도 꼭 필요한 의사, 의료체계가 더 든든하게 자리하면 좋겠다. 그래서 멀어서 더 아파야 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일이 없어졌으면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