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헌책방⑧ “책,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주시오”

  • 입력 2020.09.13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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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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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 헌책방에, 교과서나 참고서를 팔고 사려는 학생들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수나 서지학자, 그리고 옛날문헌에 눈이 밝은 인사동 고서점 주인들도 틈나는 대로 그 책방거리로 발품을 팔았다. 그들은 찾는 책을 미리 정해두고서 서점에 들르는 게 아니라 혹시 뭔가 ‘물건’이 될 만한 것이 있나, 둘러보러 나온다는 점에서 학생 고객들과 차이가 났다.

반백의 역사학 전공 교수가 양지서림으로 들어선다.

-교수님, 오늘은 뭘 좀 찾으셨어요?

-아, 저 쪽 제일서점에 갔다가 일제 초기 의병활동에 관련된 서책 하나를 건졌어요.

-잠깐만요, 저도 귀한 책자인 것 같아서 한문책 한 권을 저 위에다 보관해뒀는데….

-아, 그래요? 어디 봅시다.

“여기 헌책방 주인들이야 학생들의 교재를 주로 취급하기 때문에, 무슨 희귀문헌이 들어왔다 해도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인사동 고서점 주인들은 그 방면에 식견이 있단 말예요. 여기서 헐값에 사다가는 수십 배를 받고 팔기도 해요.”

양지서림 주인 성세제 씨는, 당시 인사동 서점에 진열되어서 귀한 대접을 받았던 고서적의 태반이, 청계천 헌책방에서 가져간 것들이라 했다.

그러나 청계천 헌책방 주인들에게 횡재를 안겨주는 손님은, 학생들도 아니고 교수나 서지학자들도 아니었다. 그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손님은 이런 사람이다.

살집이 넉넉한 사내가 거추꾼을 대동하고서, 잦바듬한 자세로 볼록 나온 배를 들이밀며(당시엔 넉넉히 불거진 배가 ‘사장’이 갖춰야 할 풍채로 통했다) 양지서림에 들어온다.

-어이, 비서, 내방 책장 사이즈가 어떻게 되지?

-아, 예, 이번에 사장실에 새로 들여놓은 책장은 가로가 2미터고 세로가 2미터 50입니다.

-흐음, 그렇다면…이봐요, 쥔장, 두꺼운 책들 꽂혀 있는 저어기서부터 저 아래 칸까지 모두 계산하면 책값이 얼마요? 아, 참, 그리고 영어로 된 책도 몇 권 있었으면 좋겠는데….

줄자를 가지고 와서는, 자기 방 책장 규격에 맞춰서 책들을 아예 ‘책꽂이 떼기’로 사가는 졸부 고객들이 종종 있었다. 그 시절엔 강남개발이다 뭣이다 해서 신흥 부자들이 도처에 발흥하였다. 너도나도 사장이었다.

아예 서점 주인을 새로 차린 회사의 사장실로 데리고 가서는 “그래도 사장실인데 화분하고 소파만 있어서야 쓰나. 책이 좀 꽂혀 있어야지” 하면서, 빈 책장을 구색 맞춰서 좀 채워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허위의식이야 쓴웃음을 짓게 하지만, 그래도 그 무렵에는 책을 꽂아서 겉치장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들이나마 가지고 있었으니 기특한 일이 아닌가.

198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자 경제상황이 호전되어서 형편들이 좀 나아지기 시작했고, 따라서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평화시장 헌책방 거리에서 군데군데 이가 빠진 듯 책방들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체육사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20개를 넘나들던 헌책방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90년대 초에는 48개만 남고는 모두 문을 닫았다.

내가 취재차 방문했던 2001년 3월, 양지서림에는 대여섯 권으로 묶인 ‘사상계’ 영인본과 장준하의 ‘돌베개’가 몇 년째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한 구석에 꽂혀 있었다. 성세제 씨가 한숨에 버무려 이렇게 말했다.

“‘사상계’ 과월호 한 권을 두고 서로 사겠다고 다투던 그 대학생들은 다 어디 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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