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헌책방⑦ “책 도둑을 잡아라!”

  • 입력 2020.09.06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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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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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평화시장 헌책방들은 말이 책방이지 고물상 취급을 받았다. 따라서 책방의 영업 허가를 경찰서에서 받아야 했고, 누군가가 훔친 책을 구입했을 경우 책방 주인에게 장물취득 혐의가 들씌워져서 경찰의 조사를 받은 뒤, 적잖은 벌금을 물어야 했다.

관할 경찰서에서는 헌책방마다 도서구입 장부를 비치하게 하고 언제, 어디 사는 누구로부터, 어떤 책을 샀는지를 일일이 기록하도록 지도했다. 특히 제법 값이 나가는 대학교재의 경우, 장부에 기록하지 않은 채 진열대에 꽂아두었다가 발각되는 날에는, 책방주인은 여지없이 장물아비 취급을 당해야 했다. 양지서림 주인 성세제는 이런 일도 겪었다. 한 대학생이 책방에 들어왔다.

-혹시 곽윤직의 민법시리즈 있습니까?

-그럼, 있고말고. 여기 곽윤직 교수가 지은 민법총칙, 채권강론, 물권법…어때, 다 깨끗하지?

대학생 손님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책장을 넘겨가며 여기저기 상태를 살피는 듯하더니,

-아저씨, 제가 오늘은 돈을 안 갖고 와서…다음에 사러 올게요.

그러고는 책방을 나갔다. 뭐 그러나보다 했는데 잠깐 만에 그 대학생은 경찰관을 대동하고 다시 책방에 나타났다. 그는 조금 전의 그 책들을 주저 없이 서가에서 뽑아들었다.

-경찰관 아저씨, 여기 있는 민법시리즈 세 권이 전부 제 책이거든요. 휴학하고 군대 가 있는 동안에 우리 집에 도둑이 들어서 책을 몽땅 도둑맞았는데 글쎄, 이 책방에 꽂혀 있지 뭡니까.

-허허, 양지서림 쥔 양반, 아주 장물아비로구먼. 도서구입 장부 들고 경찰서로 따라 오세요.

그래서 성세제는 꼼짝없이 그 대학생 입회하에 장물취득 혐의로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 책들을 언제 누구한테서 샀는지 구입대장에서 기록을 좀 찾아보세요.

-아, 예. 그게 지지난 달이었는데… 분명히 신분증 확인하고 이름이랑 적어놨는데….

그러나 구입대장을 아무리 살펴봐도 책이름도 그 책을 판 사람의 이름도 뵈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는데…성세제는 진땀이 났다. 경찰이 탁자를 치며 을러댄다.

-당신, 장물인 줄 알고 일부러 안 적은 거지? 당신네 책방, 영업허가 취소야!

지켜보던 그 대학생도 덩달아 흥분을 한다.

-장부에다 기록을 해놨더라면, 내가 잃어버린 다른 책들까지 훔쳐간 그 도둑놈을 잡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경찰 아저씨, 이 책방 주인 법대로 처벌해 주세요. 도둑놈도 나쁘지만 상습적으로 장물을 받아서 장사해온 이 사람이 더 나빠요!

책 주인이 법대생답게 ‘법대로’ 처벌을 해달라고 단호히 말했다. 반면에 “내가 수상한 책인 줄 알면서 샀던 것도 아니고…”라는 성세제의 변명은 어설프기만 했다. 그런데 그 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장부의 맨 뒤표지 안쪽을 살펴보던 성세제가 소리쳤다.

-찾았어요! 장부 맨 뒷장에다 적어놓고 명부에 옮겨 적는 걸 깜빡 했어요. 보세요, 민법 시리즈 세 권 구입한 사람 인적사항, 여기 있잖아요!

경찰과 책 주인이 반색을 했다. 경찰이 젊은 경찰을 불렀다.

-어이, 최 순경! 인적사항 적어줄 테니까 책 도둑놈 하나 연행해 와!

그런데 성세제가 적어둔 뒤쪽의 인적사항을 얼핏 살피던 그 대학생이 갑자기, 그 민법 책들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꽁무니를 뺐다. 경찰이 장난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대학생이 돌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책을 훔쳐다 판 사람이 알고 보니 제 동생 녀석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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