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 식품공전

  • 입력 2020.08.30 18:00
  • 기자명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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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참 존경하고 좋아하는 여성농민이 있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사회를 섬긴 분이다. 올해 어느 날, 내게 편지를 보내, 앞으로는 지역 농산물로 맛있고 소박한 반찬을 만들어 공급하는 일을 시작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첫 반찬 꾸러미를 정성스럽게 보내 주셨다. 부추김치, 깻잎무침, 마늘쫑, 손두부, 새송이버섯 장아찌였다. 어쩌면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 보내셨지? 행복한 식사였다.

우리 농민은 소농이다. 그 장점을 살리는 데 길이 있다. 사회구성원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식품체제’를 소농이라는 토대 위에 지어야 한다. 소농과 사회를 가깝게 연결해 주고, 서로 긴밀하게 유익을 주고받는 체제여야 한다. 간결하게 말하면, 소농에게 더 많은 돈이 돌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식품체제가 소농에게 장벽이 아니라 안마당, 온실 또는 배양소가 돼야만 한다.

그동안 전국의 많은 농민들의 수고로, 개선된 부분은 있다. 이를테면 소농이 식품위생법의 식품 제조판매영업 허가를 받는 데에 필요한 ‘정화조를 갖춘 화장실을 갖출 것’이라는 사업장 시설 요건은 가까운 곳에 그러한 화장실이 있으면 되는 것으로 달라졌다. 여러 지역에서 조례를 만들어 소농의 식품위생법 상 시설 기준 부담을 일부 덜어 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소농에게 식품위생법의 영업 허가 장벽은 너무도 높다. 돈도 많이 들고 소농의 식품가공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전통 장류는 오랜 기간 위생과 맛을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충분히 검증받았음에도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해 전통적 외부 노출의 제조 공정과 다른 방식으로, 플라스틱 뚜껑을 만들어 사업장 안에 둬야 한다. 외부 자연 환경과 건강한 균에 노출돼 그 과정 속에서 담보되는 안전과 맛이라는 장점을 살릴 수가 없게 된다. 아무리 식품위생법 시설 기준 특례나 지원 조례가 있다고 해도, 한 분 한 분 소농에게는 막상 자신이 선택한 물품과 작업 공간에 이를 어떻게 적용해야 합법적이 되는지 명료하지도 간단하지도 않다. 돈도 많이 든다.

소농을 위한 대전환이 필요하다. 소농이 자신의 지혜와 땀으로 수고하면 식품 영업에서 합법성을 달성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전환이 있어야 한다. 전북 완주군과 같이 체계적으로 군청이 지원하고, 농산물 가공센터를 공동 이용하는 훌륭한 사례도 있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설비도 중요하지만, 소농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근본적 식품위생제도가 나와야 한다.

그것은 소농이 지금까지 해 온 방식을 그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설이 있어야만 합법적으로 반찬 사업을 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다. 오랫동안 이 땅에서 소농이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반찬을 만드는 공정과 절차를 법제화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를 <농민 식품공전>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의 식품공전체제는 소농을 알지 못한다. 큰 식품회사가 안전과 위생의 모범이라는 철학을 가진 공전이다. 그러다 보니, 소농에게 큰 식품회사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농민 식품공전은 소농이 이미 하고 있거나 하는 것이 좋은 식품 가공 영역을 세밀하게 분류한다. 소농이 오랫동안 만들어 온 전통 식품의 여러 유형을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식품공전에 반영한다. 여기에 각 가공 공정의 재료적 특성을 기술한다. 좀 그럴듯하게 쓴 말이지만 실은 해당 반찬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를 공전이라는 법전에서 적어 둔다는 뜻이다. 해당 식품의 특성을 만들어 내는 제조 공정과 절차를 기술한다. 끝으로 이 과정에서 위생상 유의할 사항을 해당 식품별로 특별히 기술한다. 앞에서 본 전통 장류를 예로 들면, 특별히 위생을 담보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써 왔던 방식을 기술하는 것이다.

농민이라면 누구나 이 농민 식품공전을 준수해 농산물 가공을 하는 한, 적법하게 판매할 수 있다. 소비자들도 안전을 보장받는다. 이것이 소농이 주인처럼 활동하는 식품체제다. 소농에게 시설을 요구하는 낡은 방식이 아니어도 소비자 식품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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