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자본주의와 농업

  • 입력 2020.08.30 18:00
  • 기자명 김호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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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단국대 교수
김호 단국대 교수

한국판 뉴딜=재난 자본주의?

국가적 재난 상황은 기업(자본)이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캐나다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은 이를 재난 자본주의라고 했다. 재난 자본주의란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사회적·자연적 재난 등의 위기상황 이후, 자본의 지배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나오미 클라인은 충격적인 사회적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국민의 불안과 공포를 이용해 지배세력을 위한 체제를 더욱 공공히 했던 남미와 동유럽, 남아프리카와 러시아, 이라크, 아시아 등의 사례를 통해 재난 자본주의를 설명하고 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세계적인 경제 위기도 재난 자본주의가 먹잇감으로 삼을 만한 전형적인 재난이라는 것이다. 재난→경제적 충격→경제적 위기→자본(민영화, 규제 완화 등)의 지배→불평등 심화 등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

지난 7월 14일 제7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표한 한국판 뉴딜의 첫째 이유로 코로나와 경제충격을 들고 있다. 1930년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글로벌 경기침체, 코로나 팬데믹, 경제 전반의 위기국면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한국판 뉴딜의 3개 영역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다.

10개 대표과제로는 ①데이터 댐 ②지능형(AI) 정부 ③스마트 의료 인프라 ④그린 스마트 스쿨 ⑤디지털 트윈 ⑥국민안전 SOC 디지털화 ⑦스마트 그린산단 ⑧그린 리모델링 ⑨그린 에너지 ⑩친환경 미래 모빌리티가 있다. 이 같은 사업의 배경과 성격은 재난 자본주의 도식과 매우 유사하다. 재난 상황에 따른 위기를 강조하고 자본에게 기회를 주며 노동의 자동화와 유연화, 디지털화가 추진되는 것이다. 정부는 2025년까지 19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지만, 줄어드는 일자리는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한국판 뉴딜도 재난 자본주의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원격 또는 비대면 방식의 의료와 교육 부문에서도 이를 지적하고 있다. 재난 자본주의의 핵심은 민영화, 자유 시장경제, 규제 완화다. 2025년까지 민간과 지자체를 포함해 약 16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막대한 정부의 재정이 디지털과 그린 분야의 SOC 구축과 첨단시설 설치사업에 투입된다. 기업은 두 손을 들어 환영할 만하다.

규제 완화의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자유 시장경제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경제연구원은 대체근로 허용과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감염병 발생 시 특별연장근로 자동허용,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 파견 허용업종 확대, 임금체계 개편, 화학물질 등록기준 완화 등을 포함한 노동·환경 분야 입법과제 33개를 발표했다(연합뉴스 6.25). 재난 자본주의는 무한경쟁을 본질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진화된 형태다.

재난과 농업

자연재해와 농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에 무려 54일 동안 내린 폭우는 500년에 한 번 올만한 규모의 비였다(한국농정신문, 8.18)고 한다. 기후변화는 기후위기가 됐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농산물 판로에 애를 먹은 농민은 이번 폭우로 생산현장마저 무너지는 고통을 받았다. 태풍, 가뭄, 홍수, 냉해, 폭설 등이 최근에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태풍, 가뭄, 호우 등 커다란 자연재난만 12번이나 있었다. 농업은 자연 기후적인 조건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농업경제학의 기초다.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려 인간의 생존을 위태롭게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의 훼손이 재난을 불러온다. 기후변화에 의한 자연재난과 사스나 메르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도 이것 때문이다.

자연의 법칙에 의한 생산방식의 한계를 인위적인 첨단시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함 때문이다. 계절 생산을 연중생산으로 바꾸고, 수십 년의 농사경험을 디지털 기술로 대체하며, 토양 양분으로 자라는 식물을 조제된 양액으로 기르고자 하는 일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자연의 법칙을 자본으로 대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재난 자본주의는 이런 이치에는 관심이 없고 대규모 시설의 설치사업을 통해 이윤을 추구한다.

수년 전에 문제됐던 간척지 대규모 유리온실 건설, 지금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팜 혁신밸리, 최근에 건설한 새만금 간척지의 대규모 태양광 단지, 농지와 산지에 무분별하게 설치해 농촌경관과 자연환경, 농경지를 훼손하고 있는 곳곳의 태양광 설치사업 등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 이 사업들의 배경을 농업·농촌의 위기에 두고 있다. 재난 자본주의에서 자본이 농업부문을 공략하는 전형적인 단계다.

한국판 뉴딜에서 기후위험에 대한 대응책에 ‘가뭄과 홍수 등 기후변화에 따른 물 관리 중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인공지능(AI) 기반 기후변화 대응체계 구축’이라는 사업이 있다. 또 홍수 대비책으로서 ‘홍수피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100개 지류에 실시간 수위·강수량 측정 센서 활용과 빅데이터 기반 AI 홍수예보 시스템 구축’ 사업이 있다. 기후변화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대책은 자연환경의 보전과 생태계의 안정화 등을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 즉, 반인간적이고 반생태적인 산업문명에서 생명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자연재해와 농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기후변화는 기후위기가 됐고 농민들은 자연재해로 인해 생산현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받고 있다. 이달 초 집중호우에 의한 섬진강 범람으로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지난 25일 경찰들이 하우스 철골 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자연재해와 농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기후변화는 기후위기가 됐고 농민들은 자연재해로 인해 생산현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받고 있다. 이달 초 집중호우에 의한 섬진강 범람으로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지난 25일 경찰들이 하우스 철골 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공동체 회복과 농민단체의 단결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의료진이 자원하고 구호 물품을 보내는 일은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역대급 폭우에 의한 자연재난에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복구를 돕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벼농사 위주의 농업을 해왔다. 공동체 의식은 벼농사 위주의 영농활동에서 형성된 오래된 속성이다. 농촌공동체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촌의 사회조직으로서 원시사회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났다.

농촌공동체는 영농활동뿐 아니라 일상생활, 전통문화, 상호부조 등 농촌 생활 전반에 걸쳐 동고동락하는 생활공동체다. 농촌계와 두레는 품앗이와 함께 농촌공동체의 모습이며 활동이었다. 품앗이는 노동교환이라는 우리말로서, 논 농업의 모내기부터 수확 때까지 마을에서 농사일을 서로 협동하여 함께 하는 관습이었다. 농촌공동체는 산업문명의 확대와 기계화, 천재지변, 질병 등에 의해 해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농촌에서 상부상조는 아직도 생활관습이며 전통문화는 계승 발전되고 있다. 재난이 발생하면 농촌사회 구성원은 연대와 협력으로 공동 대응한다. 농촌공동체 회복의 희망이 있다는 증거다. 앞으로도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코로나19로 경제침체가 장기화되거나 코로나 사태가 진정돼도 경제회복 속도가 기대만큼 빠르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소비자는 소득이 감소하면 식료품 지출을 먼저 줄이는 성향이 있다.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식품을 매개로 한 도농공동체를 고민할 때다. 최근 학교급식의 중단으로 꾸러미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꾸러미 사업을 조직화, 체계화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교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도농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뢰이며, 신뢰는 상호 교류-소통-협력을 통해 쌓인다.

재난 자본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농민·농업인단체의 단결과 협력이 중요하다. 자본은 농업·농촌의 위기를 틈타 교묘하게 진입해 이윤을 추구하는 사례가 많았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내세워 규모화 농업을 조장해, 정부지원금을 받아 대규모 시설과 첨단장비 설치사업을 해왔다. 규모화 농정을 추진한 지 30년 이상이 됐지만, 아직도 농가 호당 경지면적은 1.56ha에 불과하다. 농산물 수입은 빠르게 증가해왔고 곡물자급률은 21.7%까지 떨어졌다.

국내외 자본의 지속적인 공략에 대응하는 정책대안을 하나의 목소리로 주장할 수 있는 강한 농민·농업인단체가 되도록 단결해야 한다. 자본과 권력을 바탕으로 하는 재난 자본주의는 농업·농촌의 위기에 대해 첨단화와 자동화를 내세워 지배체제를 형성하는 기회를 만든다. 농업·농촌의 위기는 시장개방과 기후변화로 인해 초래됐지만, 최근에는 그 요인이 늘고 있다.

공공영역의 확장

농정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번 폭우로 다시 깨닫게 된 기후변화의 위력과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재난의 주기성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농정방향을 요구하고 있다. 갈수록 주기가 빨라지고 있는 자연재해와 코로나19로 인한 국내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상태도 심각한 과제가 되고 있다.

또 자유무역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어가는 교역질서의 과도기적 상태에서 농산물 수급의 균형을 이루는 방안이 수립돼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 하는 가운데, 국력을 바탕으로 상품종류별, 농산물 품목별, 교역사례별 등에 따른 개방요구와 보호무역 관철 등을 선택적으로 주장하는 혼합형 무역체계가 될 가능성이 있다. 보호무역주의와 기후변화, 각 나라의 식량안보로 인한 해외 곡물 공급의 감소와 곡물 이동의 제한에 대비해야 한다.

이런 농정환경의 변화와 IMF 관리체제의 경험을 고려해, 농업·농촌의 공익적 역할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 특히 저수요, 저물가, 저투자, 저성장, 저금리 등 현상이 지속되는 뉴노멀시대에는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실업이 증가한다. IMF 관리체제에 농업이 제 역할을 다함으로써 국민의 기초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역할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자본)보다는 공공부문의 역할이 더 확대돼야 한다. 농산물의 안정적인 생산과 유통, 안전한 소비와 관련된 핵심적인 사업을 공공부문이 직접 담당해야 한다. 식량주권의 강화와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법제화해 국민에게 안전한 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을 최상의 목표로 둬야 한다.

공공영역의 확장은 농식품부와 지자체, 농업 관련 공공기관, 농·수·축협 등의 역할분담을 통해 추진될 수 있다. 빈번해지고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는 자연재해에 대한 대책과 보상, 후계인력의 확보, 농지의 보전, 생산-가공-유통 연계의 계약재배 확대를 통한 가격 안정화 등으로 재생산이 가능할 수 있는 기초를 갖춰야 한다.

환경친화적 생산방식의 확산으로 농업의 친환경성과 생태계 보전기능을 다할 수 있는 지도도 필요하다. 도농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 체계(대안유통)의 구축 등 공공영역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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