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헌책방⑥ 헌책방 주인은 장물아비?

  • 입력 2020.08.30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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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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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의 어느 여름날, 한 중년 부인이 중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양지서림’을 찾아왔다. 그런데 책을 사러 온 게 아니라 서점주인 성세제를 만나러 왔노라 했다.

-누구…시더라…아, 이십 몇 년 전에 야학에서 애들 가르치던 그 대학생?

-알아보시네요! 애 옷 사러 평화시장에 나왔다가 양지서림 간판이 보여서 혹시나 해서 들렀는데…어이구, 아저씨도 이젠 좀 늙으셨네요. 아, 참 그때 제가 책값 떼먹은 거 있지요?

-며칠 뒤에 와서 다 갚았잖아.

-아녜요. 4,000원만 내고 나머지 8,000원은 다음에 준다 하고서 못 갚았잖아요.

-무슨 소리야. 난 받았는데?

대학생들이 하던 야학을 비롯하여 비인가 학교들이 서울에만도 부지기수였는데, 그 학교들은 문교부에서 교과서를 공급하지 않았으므로, 청계천 헌책방들이 그 학교들의 교재공급을 담당해야 했다. 교과서는 무조건 500원에 판다는 묵계 같은 것이 있었으나, 대학생들이 하는 야학교재로 쓰이는 경우 300원이나 250원에 팔았고, 더러는 나중에 갚으라고 외상을 주기도 했다. 그 때 야학활동을 했던 여선생이, 당시 자신이 가르치던 야간학교 학생만한 나이의 아들을 데리고서 다시 책방을 찾은 것이다.

-아저씨, 제가 졸업 후에 큰 회사에 들어가서 월급을 겁나게 많이 받거든요. 책 가져가던 그 날 떨고 계시던 아저씨 생각이 나서 잠바 한 벌 하고, 소고기 두 근 샀어요. 잠바는 싸구려예요. 평화시장 옷값 저렴하잖아요. 그때 못 갚은 책값에다 이자를 좀 얹어 받는다 생각하시고 받으세요. 아, 참, 그리고…그때 가르쳤던 야간 학교 아이들, 다 씩씩하게 잘 살고 있어요.

성세제 씨는, 그 시절엔 그런 낭만이 있어 좋았노라 했다. 그러고는 내 귓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사실은 그 야학 선생, 외상으로 가져갔던 책값 8,000원, 며칠 뒤에 와서 확실히 갚았거든요.”

그러나 평화시장 책방거리에 그런 미담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한 대학생이 서점에 들어섰다.

-혹시 박문옥이 지은 행정학 책이 여기 있나요?

-흐음, 내가 찾아줄게요. 어, 여기 있네.

책을 받아든 그 학생은 거침없이 책장을 넘기더니 무엇인가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쉰다.

-어휴, 저는 저 위, 한양대 학생인데요. 이거 지난 수요일에 학교 도서관에서 도둑맞은 제 책이거든요. 여기 보세요, 제 이름 영문 이니셜도 있고, 보충필기 해놓은 흔적도 있고 또….

-그럼 됐네. 가져가시게. 돈 안 받을 테니.

청계천 헌책방 주인들 중 이런 상황을 몇 번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경우 책방 주인들은 그 책을 미련 없이 원주인에게 돌려준다. 그런데 이상하다. 훔친 책이든 주운 책이든, 책방주인들은 분명 누군가로부터 돈을 주고 구입하였는데, 왜 일언반구 항변도 없이 원주인에게 선선히 돌려주는 것일까? ‘그래야만 하는 사정’을, 성세제 씨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 거리의 헌책방들이 간판이야 그럴듯하게 무슨 서림이다, 무슨 서점이다, 이렇게 달아놓았지만 당국으로부터 무슨 허가를 받고서 책장사를 하는지 아세요? 저기 벽에 걸려 있는 것 보세요. ‘고물상 영업허가증’이라고요. 하긴 뭐 헌책이니까 고물은 고물이지요. 잃어버린 책의 주인이 찾아와서 책을 공짜로 내주는 경우는 그래도 다행이에요. 어떤 때는 아예 경찰을 데리고 온다고요. 그럼 파출소로 끌려가서 진술서를 써야 해요. 장물(贓物) 취급 혐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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