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늦었지만 이제라도

  • 입력 2020.08.23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쏟아지는 비가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난 5일 본지는 ‘농작물 자연재해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당시 토론회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한 농민이 명함을 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고, 다음날 영암에서 대봉감(떫은감)을 재배하는 농민과 통화를 하게 됐다.

농민에 따르면 떫은감은 낙엽 발생과 거의 동시에 낙과가 진행되고 2차 피해까지 발생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단감과 동일하게 적과 종료 이후 피해율은 낙엽율에 경과일수를 제한 값으로 산출된다. 농민은 “경과일수 적용이 필요 없는 떫은감의 특성은 철저히 무시된 채 그간 피해율이 산정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농민은 과원에 단감과 떫은감이 혼식돼 있을 경우 보험 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단감·떫은감을 절반씩 심었더라도 품목별로 보험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농민들은 식재주수가 많은 품목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농민에 따르면 단감이 함께 식재돼 있지만 떫은감 보험을 가입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단감 피해는 미보상감수량으로 인정돼 보상조차 받을 수 없으며 피해가 클 경우엔 인수를 거부당하는 사태까지 왕왕 발생하고 있다.

물론 도입 20년 차에 접어든 농작물재해보험은 외연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2006년 도입된 떫은감 보험이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운영됐듯 재해 대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농작물재해보험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게다가 정부를 등에 업은 보험사는 손해와 적자를 이유로 보상 폭을 점차 제한하는 개정을 추진 중이며, 운영비 지원과 함께 거대 재해 발생 시 농어업재해재보험기금으로 보험사 손실까지 보전해주는 정부는 보험사의 개악을 용인하고 있다. 농민의 영농재개를 돕기 위한 정책보험이 보험사와 상품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셈이다.

그간 자연재해와 농작물 피해 등을 취재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보상 제도와 정책을 마주했고 바뀌지 않는 현실이 답답했지만, 올해의 경우 피해가 막심한 만큼 개인적으로도 큰 절망을 느끼고 있다. 물론 농민들의 분노와 답답함, 허망함에 비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조차 없는 농민들은 효용성 없는 보험제도 폐지와 함께 재해보상법 제정 등 국가의 역할과 책임이 강화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또 최근 두 달 남짓 지속된 호우는 우리나라의 기후위기를 반증하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형편없는 농업재해 대책,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