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품격②] 전북 정읍 칠보농협

전국 유일 경제사업 ‘옹동제약’
장인정신 구증구포로 일군 ‘옹동 숙지황’ … 계약재배 통해 농가소득도 향상

  • 입력 2020.08.23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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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지역농협의 핵심은 경제사업에 있다. 농민조합원이 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판매할 수 있도록 돕고, 이를 통해 농민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 지역농협의 목적이어서다. 이에 <한국농정>은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개혁적 성향의 농협 조합장 모임 정명회와 공동으로 매월 1회 지역농협 경제사업의 모범사례를 찾아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14일 전북 정읍 칠보농협 옹동제약 앞에서 조합장과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강시원 공장장, 구연형 계장, 권혁빈 조합장, 박원균 한약사, 전세웅 사업소장. 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14일 전북 정읍 칠보농협 옹동제약 앞에서 조합장과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강시원 공장장, 구연형 계장, 권혁빈 조합장, 박원균 한약사, 전세웅 사업소장. 

한방에 있어 대표적 명약으로 알려진 공진단.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집대성한 동의보감은 공진단에 대해 “체질이 허약하더라도 타고난 원기를 든든히 하여 신수(腎水)를 오르게 하고 심화(心火)를 내리게 하므로 온갖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황제의 보약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조선시대 많은 왕들이 공진단을 찾은 이유다.

이런 공진단을 직접 가공해 판매하는 지역농협이 있다. 전국 1,118곳의 농협 중에 유일하게 제약회사를 경제사업장으로 둔 전북 정읍의 칠보농협이다. 칠보농협은 산내·산외·옹동농협 등이 합병한 농협으로 지난 1990년 한약재 제약사 ‘옹동제약’을 설립했다. 지난 14일 칠보농협 옹동제약을 찾아 한약재 가공사업 전반을 확인했다.

칠보농협의 옹동제약 설립 중심엔 ‘지황’이 있다. 지황은 통화식물목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굵고 갈색이 도는 뿌리를 보혈을 위한 한약재로 사용한다. 생것은 생지황, 말린 것은 건지황, 술에 담가 쪄 말린 것을 숙지황이라고 한다.

옹동면은 예부터 지황으로 유명했다. 물이 잘 빠지고 거름기가 많은 토지가 지황 재배에 적격이었던 까닭이다. 이에 1992년엔 농림부가 옹동면을 지황 주산단지로 지정했다. 당시 재배 면적은 45ha로 전국 생산량의 70%를 점유했다. 특히 건지황을 세척, 주침, 증숙, 건조를 9차례 반복하는, 이른바 구증구포(九蒸九曝)라는 전통의 방식으로 생산한 이 지역 숙지황은 ‘옹동 숙지황’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약재상과 한약방을 주목시켰다.

하지만 저가 중국산 수입 한약재 공세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했고, 적자가 계속되며 사업이 존폐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이에 더해 칠보농협도 농협중앙회로부터 합병 권고는 아니지만 권유를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권혁빈 칠보농협 조합장
권혁빈 칠보농협 조합장

침체기를 겪던 한약재 가공사업과 칠보농협의 회생에 디딤돌을 놓은 건 2015년 당선된 권혁빈 조합장이다. 자신을 농사꾼이라고 지칭한 권 조합장은 신용사업이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농촌형농협의 살길은 경제사업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경제사업 활성화를 추진했다. 무엇보다 장인의 정신으로 명성을 얻은 숙지황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각오를 세웠다.

이후 그해 11월엔 농림축산식품부와 전라남도·정읍시 지원 아래 옹동제약 가공공장 현대화를 마무리했다. 여기엔 농협중앙회 종합컨설팅을 통한 자금 지원도 더해졌다. 앞서 10월엔 GMP(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인증도 받았다. 더불어 숙지황 가공에 심혈을 기울이고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한약사도 채용했다. 이후 KT&G(옛 한국담배인삼공사)라는 새 판로도 개척했다.

변화의 기운에 발맞춰 ‘오직 꿩이어야 한다’는 옹동제약의 철학도 세웠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지만, 오직 꿩만을 쓰겠다는 뜻이다. 조금은 느리지만 정도를 지키며 농가소득 증대와 국민 건강 증진에 앞장서겠다는 다짐을 담은 철학이다.

옹동제약 철학 태동과 더불어 제품 다변화의 한축은 2015년 채용된 박원균 한약사가 맡았다. 박 한약사는 다소 촌스러운 포장부터 시작해 경옥고를 떠먹는 형태에서 환 형태로 제형에 변화를 줬다. 농협 쌍화차와 더불어 공진단인 침향황제단, 총명황제단 등의 제품도 개발했다.

여러 변화가 상승 작용을 일으켜 매출도 늘기 시작했다. 전세웅 옹동제약 사업소장에 의하면 2015년 이후 현재까지 매년 5%씩 성장해 지금은 칠보농협 전체 매출액의 10%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경제사업 총 매출액은 234억원으로 옹동제약 매출액은 20억원 가량인 셈이다.

옹동제약 사업 성장은 농가소득에도 보탬이 됐다. 정 사업소장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 계약재배 농가 당 평균 1,000평을 재배했고, 생산량 180톤 전량을 칠보농협이 수매했다. 수매가는 1kg 4,800원이다. 수확기 전인 10월 농가가 포함된 칠보농협 지황 가격결정위원회에서 수매가를 결정했다. 1평 당 평균 지황 5kg을 생산한다면 600평의 조수입은 1,000만원이 예상된다. 같은 면적에서 미작의 경우 200만원, 타 작물의 경우엔 300~400만원의 조수입이 예상되는데 지황을 재배하면 두 배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는 셈이다.

또한 칠보농협에선 농가 확대를 위해 지도사업비를 통해 멀칭·칼슘·영양제 보조사업도 실시했다. 소득과 지원이 입소문을 타면서 칠보농협 지황 계약재배는 지난해 54농가에서 올해는 6농가가 늘어 60농가다.

물론 앞으로의 과제도 있다. 한약재 가공식품 설비에 HACCP(식품안전관리 인증기준)을 적용한 위생관리 체계를 올해 안에 구축하고, 계약재배 농가에서 GAP(농산물 우수관리 인증제도) 인증 농산물을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숙지황과 가공식품의 생산량과 판매량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권 조합장은 “나라의 생명창고를 지키는 농민을 섬긴다는 사명으로 고통 분담을 함께하며, 산적한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전세웅 칠보농협 옹동제약 사업소장이 사무실 인근 지황밭에서 지황 재배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전세웅 칠보농협 옹동제약 사업소장이 사무실 인근 지황밭에서 지황 재배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권혁빈 칠보농협 조합장이 옹동제약 내 숙지황 구증구포 가공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권혁빈 칠보농협 조합장이 옹동제약 내 숙지황 구증구포 가공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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