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구멍농사에 구멍 난 농민 마음

  • 입력 2020.08.23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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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올해 같은 농사를 구멍농사라 한다지요? 농사가 고루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안에서도 어떤 집은 멀쩡하니 농사가 잘 됐는데 어떤 집은 쫄딱 망하는 꼴더러 군데군데 구멍이 난 모양 같다고 구멍농사라 한답니다.

올 농사가 딱 그렇습니다. 그렇게 비가 내렸는데도 참깻대가 실하게 잘 큰 집이 있는가 하면, 잘 크다가 수확기의 비에 못 이겨 종자도 못 찾고 녹아내린 집도 있고, 고추도 이미 탄저병이 다 들어 뽑아내야 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수월찮게 수확하는 집도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농사는 하늘에 맡겨져 있는 듯합니다. 정성을 쏟는 정도에 따라, 섬세한 눈길과 손길에 따라 실력 차이가 좀 나긴 해도 농사가 전반적인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경우랄지, 아니면 평년작 이상의 수확에는 날씨 변수만큼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한 마을 안에서만 구멍농사가 아니라, 지역 간에도 차이가 어지간히 큽니다. 어떤 지역은 너무나 큰 수해를 입어서 언제나 회복될지 걱정이 앞서는 곳이 있는가 하면, 비가 많이 내린 것 외에는 별 탈을 입지 않는 곳도 있으니 세상이 참 고르지가 않습니다. 갈수록 농사가 어렵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멀쩡하게 버텨주던 과수들이 뜬금없이 낙엽병이나 탄저병에 걸려 이파리를 뚝뚝 떨어뜨리는 통에 가슴에 피멍이 드는 농민들이 있다 하니 참 애탈 일입니다. 너무 큰 물난리를 만난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봄부터 냉해 입고 우박 맞고, 최장 장마기간에 폭염까지 겹쳐 농사에 도대체 ‘예측’이라는 것이 어려운 시절입니다.

와중에 당도가 낮아 판매가 어려운 복숭아 농가를 돕고자 여러 지인들에게 강매수준으로 팔기도 하고, 지역 여성농민들과 수해지역에 급식 봉사를 다녀오며 돕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픔을 나누고 미안함을 덜고자 했지만, 현실은 참 암담하기만 합니다.

정말이지 식탁에 오른 매끈한 오이 반찬, 상추쌈 하나를 보더라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이 날씨에 저것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있기까지 농민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하는 생각에 거저 농산물로, 또는 반찬으로만 보이지가 않습니다.

과연 우리는 한여름에 오이나 상추를 계속 먹을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 또는 도대체 우리는 농업으로 생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아니 이렇게나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환경 속에 주종으로 살아갈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다소 잠잠하던 코로나19가 재확산에 돌입하게 됐으니 이래저래 일상이 마비되고, 여러 계획이 수정되고, 그래서 바람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시절로 들어섰습니다. 농사뿐 아니라 그 모든 삶을 재구성해야 할 판입니다. 무한 경쟁을 통해 더 많이 가진 자가 되길 꿈꾸며 더 많이 누리고, 편리함에 자유로움까지 덧입고서 세상 행복하게 살겠다는 욕망이 헛된 욕망일 수 있음을 세상이 경고하나 봅니다.

전력으로 수해농가를 도와서 일어서게끔 하고, 생활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 및 위생실천으로 전염병 확산을 막아 나서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너무도 급변하고 있는 환경문제를 전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고서 모두가 해결의 주체가 되도록 고민을 나누도록 해야겠습니다.

그토록 큰 문제인 민족모순, 권력관계, 계급갈등, 인종차별, 성별모순… 그 많은 문제도 실은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지구가 영원하다는 전제 아래의 문제가 아니던가요. 그 큰 그림 속에서 각종 문제가 재설정 되도록 해야겠지요. 이 위기의 시대에 농업이 나아가야 할 길은 또 어떠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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