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헌책방④ 서점의 다락방, 봉제공의 다락방

  • 입력 2020.08.16 18:00
  • 수정 2020.08.27 16:0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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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양지서림’ 주인 성세제가 아침에 잠을 깬 곳은 서점 다락이었다. 청계천 평화시장 바깥쪽 도로변으로 다닥다닥 늘어선 두 평짜리 책방들에는 저마다 높다란 사다리 하나씩이 놓여 있었는데, 그 사다리는 높은 곳에 꽂혀있는 책을 꺼내는 데에만 쓰였던 게 아니라, 책방 주인들의 거처인 다락을 오르내리는 통로이기도 했다.

“서점마다 천장 밑에 다락을 만들어놓고, 집이 없는 서점 주인이나 혹은 점원으로 고용된 종업원들이 거기서 생활을 했어요. 나도 시골에서 막 상경해서 형편이 뻔했는데 어디 가서 돈 내고 하숙을 할 수는 없잖아요. 베니어판 깔린 그 다락에다 곤로 갖다놓고 숙식을 해결했지요. 당시(70년대 초)만 해도 서점 쥔들 대부분이 젊은 총각들이었거든요.”

평화시장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중앙 통로를 따라 옷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 옷가게들 역시 바깥의 서점들처럼 똑같은 구조의 다락을 만들어놓았다. 높이가 1.5미터에 불과한 탓에 허리를 펴고 일어설 수가 없는 그 비좁은 다락방에서는, 봉제공과 시다들이 하루 16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성세제가 청계천에 입성하기 한 해 전인 1970년 11월에, 평화시장 봉제공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라고 외치며 전태일이 스스로의 몸을 불살랐는데, 전태일의 요구사항 중에는 바로 그 비좁은 다락방을 철폐하라는 조항도 들어있었다.

헌책방 주인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본명을 부를 필요가 없었다.

-어이 양지! 오늘은 일찍 문 열었네.

-문경! 아침밥은 먹었어?

-응, 옆집 충인한테서 수제비 몇 숟가락 얻어먹었어.

그들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양지, 문경, 충인은 모두 책방 이름이다.

이윽고 책방들의 셔터가 모두 올라갈 즈음이 되면, 헌책을 공급하는 중간상인들이 짐바리 자전거나 리어카를 끌고서 그 책방거리로 들이닥친다. 그 중간 상인들은 저마다 단골 서점을 갖고 있다. 갑자기 책방거리가 부산해진다.

-오늘은 좋은 책 좀 가져 왔어?

-내가 언제 쓸데없는 물건 갖고 오는 것 봤어요? 왕십리 중앙시장에서 제일 알짜배기만 골라 갖고 왔으니까 자, 이거 받으시고 책값 계산이나 제대로 하시우.

-어디 보자. 국민학교 4학년 전과하고 수련장, 정통종합영어, 해법수학…아이고, 이거는 뭐 표지가 아예 걸레가 됐구먼.

-그런 것 풀칠하고 수선하라고 책방 주인이 있는 거지, 가만 앉아서 돈 벌라고 그러나?

-고등학교 가정 교과서 이거 말고, 장명옥이 지은 것 좀 어디서 구해다 줘. 그저께부터 그거 찾는 여학생들이 줄을 섰는데 책이 있어야 말이지. 아, 그리고 ‘어깨동무’ 이런 잡지는 아무리 쌓아놓아 봤자 누가 사가나?

-단골 좋다는 게 뭐야. 다음에 더 좋은 책 갖다 줄 테니까 싸게라도 쳐서 받아 둬.

-어이, 양지서림 주인, 책 받아요!

-어디 보자. 고등학교 교과서가 열 권이고, 국민학교 교과서가 일곱 권, 안데르센 동화책에다, 이성헌의 수학해석, 안현필의 영어실력기초, 유진오의 정치경제, 조순의 경제학원론…좋았어. 참, ‘능력개발’에서 나온 고등학교 영어 책 좀 구해보지 그래. 아이고, 삼중당문고 이런 건 그냥 줘도 누가 안 가져가는데….

-그거 안 받아주면 단골 바꿔버릴 거야.

그렇다면 이 중간 상인들은 대체 어디서 헌책들을 수집해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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