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남의 일

  • 입력 2020.08.14 13:4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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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수해로 엉망이 된 현장들을 다닌다. 망연자실한 사람들을 찾아가 그 당연한 심정을 굳이 물어야 하는 처지부터가 난감한데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쉽지 않다. 다 젖은 참깨를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심폐소생술의 현장에서 나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들깨면 몰라도 참깨를 다루는 장면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저 참깨에 들인 수고의 과정과 온전했을 때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내가 나랑 별 다를 바 없이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전파해주고자 글을 쓰겠다고 거기에 서 있었다. 화제가 농사에서 정부 정책으로 넘어가니 그제서야 좀 아는 체를 할 수 있기는 했다. 한 농민은 현장을 한 번 다녀간 뒤에 자신이 해준 이야기 중 아무 것도 이해를 못하고, 그저 지금 상황은 어떤지 묻기 위해 계속 전화해대는 한 지역일간지 기자에 이미 신물이 나 있다고 했다. ‘너는 조금 다르네’ 싶어 한 얘기겠지만, 내 마음 속 어딘가 역시 뜨끔해지는 걸 피할 수 없다.

농업전문지 기자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강박 속에 그래도 나름 여러 가지로 애를 쓴다. 취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혹은 운 좋게 알게 되는 지식도 축적된 양이 적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를 거듭해 나갈수록, 현장을 다닐수록 소위 ‘현장성’의 담보란 내게 절대 해소되지 않는 갈증 그 비슷한 것이었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답은 이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농사일기’나 ‘농민칼럼’ 같은 글들을 통해 농사의 메커니즘 그 자체에 대해 여전히 놀랍도록 무지한 나를 본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어쩌다보니 제법 농사일을 체험하면서 상황은 조금 나아졌지만, 때때로 가는 하루 이틀 농활은 농민들 기준으로 잘해봐야 수박의 겉핥기 수준일 것이다. 심도 있는 경험을 하려면 결국 쉴 수 있는 시간에도, 혹은 직장을 벗어난 시간에도 농사를 탐구함이 옳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새삼 놀랄 것도 없는 사실이나 내게 농업이란 결국 어쩔 수 없는 ‘남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이 이렇게 소중한데 멸종의 위기야, 좀 들여다봐줘’라고 이야기하려면 그저 한쪽 발 하나도 제대로 저 물 속에 담그지 않은 채로는 설득력이 없지 않을까. 하는 일을 알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의 인식조차 별로 바뀌지 않는 현실에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에 대한 비판 인식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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