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농협 출범 20년, 공룡이 된 농협

농협 개혁 아닌 구조조정에 그쳐 … 통합농협 출범 1주년 기념식 무산

신경분리 이어 자산규모 재계 10위 … 여전히 메아리치는 농협 개혁 목소리

  • 입력 2020.08.16 18:00
  • 수정 2020.08.16 18:44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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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한국농정>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2000년 11월 창간호부터 2001년 12월까지 본지의 지면을 돌아보고자 한다. 20년 동안 450만명에 달하던 농민의 숫자는 300만명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시의 농업계 현안이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것도 많았다. 이에 본지는 20년 전 농업계를 조명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농정은 2001년 7월 5일 발행한 제28호 신문 1면에 통합농협 출범 1년 기념식 무산 소식을 실었다.
<한국농정>은 2001년 7월 5일 발행한 제28호 신문 1면에 통합농협 출범 1년 기념식 무산 소식을 실었다.

20년 전인 2000년 7월 1일, 농·축·인삼협중앙회가 하나가 된 통합농협중앙회가 출범했다. 농협이 농업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막대했던 만큼 <한국농정>은 2000년 11월 27일 발행된 창간특집호에서 통합농협 출범의 배경과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창간특집호의 ‘통합후 개혁프로그램이 없다’는 제목의 기사에선 국민의 정부라고 일컫는 김대중정부 시절 농협 개혁을 둘러싼 농업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통합이 개혁이다”와 “그렇지 않다”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이런 가운데 농업계에선 신경분리(신용사업·경제사업 분리)와 품목별조합을 육성하고 이를 지원할 품목별연합회 설립, 이후 중앙회 통합 등의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하나의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정부에선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중앙회부터 정리해야 한다며 시간표를 정한 채 밀어붙였고, 결국 통합농협이 출범했다. 이에 농협 개혁 진영에선 IMF 경제위기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이 농협 개혁의 자리를 대신했다는 평가와 함께 농협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국농정> 제14호(2001년 3월 22일 발행)에 게재된 ‘농협개혁 지금도 길은 있다’라는 제목의 특별기고에선 통합농협 출범을 바라보는 농업계의 시선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기고에서 한 농업계 인사는 “신경분리 없는 단순 통합은 농협에 대한 정부 통제를 쉽게 했을지는 모르지만, 중앙회의 비대화로 인한 제반 모순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향후 중앙회의 사업이 종전보다 더욱 신용사업에 편중되고 품목별·업종별전문조합 육성과 연합회 설립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렇듯 국민의 정부는 통합농협 출범을 농정 개혁 최대 성과라고 자평했지만 농업계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농협 개혁을 재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던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통합농협 출범 1년 기념식 무산이다. <한국농정>은 제28호(2001년 7월 5일 발행) 1면에 농협중앙회 본관에 농협을 상징하는 마크에 ‘근조’가 적힌 검은색 현수막이 펄럭이는 현수막 사진을 실었다. 관련 기사에 의하면 2001년 6월 29일 통합농협 출범 1주년 기념식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농협중앙회노조 노동자 600여명이 행사장을 에워싼 채 ‘졸속통합 규탄 및 자주농협 확보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통합농협 영결식을 벌였다.

통합농협 출범 1주년을 앞두고 발행한 <한국농정> 제27호(2001년 6월 28일 발행) 사설에선 그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설은 “통합농협 출범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고, 결국 정부가 추진한 농협 개혁은 실패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와 더불어 “농협 개혁을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하며 그 방향은 신경분리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통해 “농협 개혁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분열과 갈등을 보였던 농업계가 하나로 뭉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당시 <한국농정>이 전한 정부의 일방적 농협 개혁과 더불어 농업계에서 벌어진 갑론을박은 농협 개혁이 매우 복잡하고 쉽지 않은 사안임을 보여준다.

여러 논란과 우여곡절 속에 이명박정부 시절이던 2011년 신경분리를 골자로 한 농협법이 통과됐고, 2012년부터 시작한 농협 사업구조 개편은 농협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라는 지주회사 체제를 낳으며 2017년 마무리됐다.

통합농협 출범 이후 20년이 지난 현재, 농협은 자산규모 60조원에 37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순위 10위의 거대 공룡이 됐다. 갈수록 쪼그라들고만 있는 농민들의 모습에 비춰보면 모순적이기만 한다. 더군다나 겉모습은 화려하게 변했지만 내부적으로는 20년 전에 벌어지던 문제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농협중앙회장에 집중된 막강한 영향력부터 쌀 판매 사고는 물론이고 농협 계통구매를 통해 판매하는 농약과 농자재 값이 비싸다는 농민들의 성토, 농협이 경제사업에 있어 수수료 장사만 한다는 주장, 조합장 선거와 농협중앙회장 선거, 각종 임원 선거에서의 비민주성, 경제사업에 있어 중앙과 지역농협의 경합 문제 등을 일부 사례로 들 수 있다.

농협 개혁을 외치는 농민과 농업계의 목소리가 20년을 이어 현재까지 그칠 새 없이 메아리치는 이유다.

은 2001년 6월 28일 발행한 제27호 사설을 통해 통합농협 출범 이후 농협 개혁이 나아갈 방향을 전망했다.
<한국농정>은 2001년 6월 28일 발행한 제27호 사설을 통해 통합농협 출범 이후 농협 개혁이 나아갈 방향을 전망했다.
20년 전 한국농정을 보면 농협 농약 판매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을 확인할 수 있다.
20년 전 <한국농정>을 보면 농협 농약 판매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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