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6학년 3반 언니들의 인생 2막

  • 입력 2020.07.26 18:00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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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떠난 언니들이 돌아왔다. 나이 드신 친정어머니 돌봄을 타인에게 책임지우는 것에 대한 부담으로 몇 해를 고민하다 더 늦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5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돌봐야 할 아이들은 이미 다들 짝이 지어져 부담이 없었다며 미소 짓는 언니들 참 오랜만이다.

“꾸부정한 언니들의 뒷모습만 봐도 울컥해진다”며 눈물을 닦아내는 두 언니들은 어릴 적 농사짓는 것만 봐도 고생길이 훤히 보여 일찌감치 도시로 떠났지만 허리 굽은 엄마의 노고를 덜어드리지 못함에 가슴 아파했다. 한 언니는 태어난 동네에서 마을 오빠를 만나 결혼에 성공해 한 번도 고향마을을 떠나 살아보지 못했단다.

4-H 초기 활동을 했지만 농사짓는 게 무서워 식당, 연수원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다 예순이 넘어 엊그제 퇴직을 했단다. 그러저러한 사연을 지닌 세 명의 언니가 인생 2막을 설계하고 있다. 이리저리 얽히다 보니 그 언니들의 의기투합 자리에 내가 끼게 됐으니 덕분에 곱절의 인생사를 한꺼번에 경험하는 행운을 얻게 됐다.

초등학교 동창 동갑내기 세 언니들은 엄마만큼은 아니라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냐며,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눈다. 그런 언니들이 엄마의 일을 물려받으려 한다. 여!성!농!민!이다.

힘든 노동에 찌들린 여성농민이 아니라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여성농민이 되고 싶단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해 내는 그런 여성이 되고 싶단다. 꾸부정한 언니들의 뒷모습만 봐도 울컥해지는 여성농민이 아니라 꼿꼿하게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여성농민이 되고 싶단다. 나도 그런 여성농민이 되고 싶은 마음에 언니들의 의기투합에 힘을 보탠다.

그래 김치를 한번 만들어서 팔아보자. 텃밭에 심어놓은 깻잎에 열무, 부추, 고구마순까지 따다 하하호호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다. 손맛 좋은 봉식이 언니가 제일 잘하는 일은 김치 담그는 일이란다. 동네 40여년 애경사 김치 담그는 일은 언제나 언니의 몫이었다.

거기에 서울살이 친구들 사이에 손맛대장 한순이 언니까지 보태어지니 진한 전라도식 김치에 퓨전이 가미된다. 정희언니는 부각 담당이다. 친정엄마가 제일 잘했던 음식이 부각이었단다. 철마다 고추며 가죽이며 고급김까지 더해 찹쌀풀을 발라 윗목에 말려두었다 기름에 튀겨 나온 부각을 걸어다니던 시기부터 손을 보태었단다.

손맛 없는 나는 1차 농산물 생산에 행정적인 일들을 보태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팔기 위해선 더 위생적으로 해야 한단다. 거창한 식품제조공장을 통해 해썹을 받고 품목보고를 하고 품질검사를 하고 거기다 예쁘게 포장까지 해야 한단다. 이렇게 각각이 가진 고급 손맛을 어떻게 표준화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래야 한단다.

농사짓고 맛있게 만드는 것까지는 하겠는데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는 모르겠다는 언니들과 함께 팔을 걷어 부친다. 농사일 3,000평 무릎, 어깨, 팔에 손목까지 관절에 굽혀지지도 않는 일 이제 조금 줄여보자.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만 하는 인생 남들 다하는 저녁이 있는 삶 한 번 해보자. 한 달에 한 번은 꼭 남이 해주는 밥 먹기도 해보자. 두 달에 한 번은 못 가본 여행도 이곳저곳 해보자며 하하호호 김치를 담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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