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헌책방② 청계천 헌책방 ‘양지서림’의 이력서

  • 입력 2020.07.26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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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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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970년대 초부터 꽤나 발 도장을 찍고 돌아다녔던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취재하겠다고 나선 때는, 그로부터 30여 년을 훌쩍 건너뛴 2001년 3월이었다. 종로6가에서 청계천6가로 건너가면 만나게 되는 평화시장 들머리, 예전엔 그 곳이 헌책방 거리의 시작점이었는데, 예상대로 책방들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를 옷가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아, 평화시장은 옷 파는 패션시장인데 여기 와서 뭔 놈의 책방을 찾아? 저 아래 쪽으로 죽 내려가 보슈. 거긴 아직도 책 쌓아놓고 파는 가게들이 있는 것 같더구먼.”

작은 희망을 붙들고 옷가게 주인이 가리킨 쪽으로 향했다.

기다란 시장 건물 하나를 등 뒤로 밀어내면서 청계천7가 쪽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 내려가자 아, 있었다! 교양서림, 양지서림, 문경서점, 충인서점…. 옛적 한 번쯤 그 이름을 듣거나 보았음직한 헌책방의 간판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매스컴에서 간혹 취재 나오면 옛 시절의 청계천 헌책방은 사라지고 없다, 그 시절이 그립다, 뭐 이딴 식으로 추억 팔이 보도를 하는데, 지금도 헌책방이 쉰다섯 개나 남아서 장사를 아주 잘 하고 있어요! 물론 전성기에 비하면 3분의1로 줄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종이 책이 다 사라진다 해도 청계천 헌책방은 건재할 겁니다. 아시겠어요?”

두 평 넓이의 좁은 공간, 거기 천장 높이로 쌓인 헌책더미 사이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해진 책표지를 손질하고 있던 ‘양지서림’ 주인 성세제 씨가 나에게 던진 항변이다. 아, 할 말이 참 많은 사람이다. 잘 만났다. 이제 그 성씨가, 평화시장의 헌책방 주인들이 책 팔아먹고 살아온 내력을, 그리고 헌책방을 찾아왔던 사람들의 사연들을 갈피갈피 풀어놓을 것이다.

충청도 아산에서 한국전력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20대 청년 성세제(1946년생)를 청계천의 헌책방 거리로 이끈 사람은, 당시 평화시장에서 피복장사를 하고 있던 그의 매부였다. 1971년에 직장에 사표를 내고 상경하여, 청계천에 즐비한 서점 중 하나를 인수했다. 바로 ‘양지서림’이었다.

성세제에게 양지서림을 인계한 원주인 할아버지는 청계천 헌책장사의 원조 격이었다, 그가 서점을 인계하면서 성세제에게 들려준 얘기는 이러했다.

-해방 이듬해에 청계천4가 아세아 극장 근방 노상에다 책들을 펴놓고 팔기 시작했어. 헌책장사와 그렇게 인연을 맺었지. 그땐 담벼락에다 새끼줄을 쳐놓고서, 책들을 빨래처럼 죽 걸어놓고 팔았거든. 그러다가 1961년도에 청계천 복개공사가 끝나고 평화시장 건물이 들어서면서 이쪽으로 옮겨온 거야.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만 10년 동안 헌책 장사를 해온 셈이지. 노점 장사까지 합하면 20년이고. 이제 기력이 다 해서 자네에게 물려주게 됐네만, 앞으로 이 장사가 괜찮을 거야. 열심히 하다가 언젠가 후배한테 가게를 물려줄 때, 이 ‘양지서림’ 간판을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넘겨주게.

그러니까 해방 직후에 천변 노상에서 헌책들을 펴놓고 팔았던 노점상들이, 청계천 복개공사가 끝나고 평화시장 건물이 들어서자, 시장건물 바깥쪽에 조성된 두 평짜리 작은 점포로 줄줄이 입점하면서 책방거리가 조성되었다는 얘기다. 할아버지가 가게 열쇠를 넘기면서 한 마디를 보탰다.

-공간이야 단 두 평에 불과하지만 스무 평처럼 써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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