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주방에서 다 보이는데 퇴비저장소 막을 수 없다고?

퇴비장 문제로 귀촌인·원주민 갈등
관련 법 미비로 피해자 구제 어려움

  • 입력 2020.07.26 18:00
  • 기자명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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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현주 기자]

A씨는 4년 전 경남 합천으로 귀촌했다. 도시 생활로 망가진 몸을 회복하며, 농촌 생활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지난 4년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원주민과 귀농·귀촌인 간 갈등이 사회문제가 된다던데, A씨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생겼다. 원주민 B씨가 A씨의 집 근처에 퇴비저장소를 짓겠다고 한 것이다.

퇴비저장소 건설 예정지는 A씨의 집에서 불과 30m 떨어져 있다. 주방과 안방에서도 퇴비저장소가 보인다. A씨는 “산바람이 퇴비저장소를 거쳐 집까지 올 텐데 냄새가 걱정이다. 창문도 제대로 열 수 없을 것”이라며 “식수원인 지하수 관정과 퇴비저장소가 45m 떨어져 있어서 지하수 오염도 염려된다. 실제로 비가 많이 오면 산에서부터 내려온 흙탕물로 지하수가 오염되는 일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A씨는 B씨와 이야기를 하거나 군청 담당 부서에 민원을 넣는 등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퇴비저장소를 짓는 장소가 사유지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 B씨는 퇴비저장소 건설을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

A씨 집 주방에서 퇴비저장소 건설 예정지를 바라 본 모습. A씨 제공.
A씨 집 주방에서 퇴비저장소 건설 예정지를 바라 본 모습. A씨 제공.

실제로 퇴비저장소는 민가주변 거리제한에 포함되지 않는다. 퇴비 생산시설이 아니라 1차 부식된 퇴비를 가져와 숙성시키는 시설이기 때문이다. 군청 측에서도 “퇴비저장시설은 우리 주변에 방치한 퇴비를 정리해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친환경 영농을 위한 후숙퇴비 생성을 목적으로 권장하는 사업”이라며 “퇴비저장시설 건축은 민가로부터의 거리제한 등 별도의 규정이 없어 건축을 제한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라고 답변했다.

합천군은 민원에 따라 퇴비저장소 허가 여부를 결정짓기 위한 심의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하지만 합천군 관계자는 “퇴비저장소에 대한 법적 제한 사항이 없으면 허가가 날 수밖에 없다. 모든 상황에 일일이 맞춰 법을 제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상위법에 맞게 따라갈 뿐”이라고 말했다. 악영향 측면에서 축사시설과 다를 바 없는데도, 축사시설과 달리 퇴비저장소는 가축사육제한 관련 규제를 받지 않기에 심의위원회가 개최된다고 해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A씨는 “4년 전 귀촌을 준비하며 일부러 가축사육제한구역을 찾아왔는데, 퇴비저장소가 들어온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심의위원회에 갈등 당사자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문제다. 심의위원회는 관련 공무원, 합천군 의원, 대학교수 등으로 구성된다. 퇴비저장소 설립으로 피해를 보게 될 A씨 혹은 퇴비저장소를 짓겠다는 B씨가 심의위원회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행법으로는 A씨가 퇴비저장소 건설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 피해를 보는 사람은 있는데 법이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다. A씨는 “퇴비저장소 건설을 막을 방법은 이제 사실상 없다. 이제 피해가 발생한 후, 직접 증거를 모아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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